[스포츠서울 | 김동영기자] “김성근 감독님이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요.”
리그 전체로 봐도 손에 꼽히는 베테랑이다. 만으로도 40세를 넘어섰다. 그런데 시속 145㎞의 속구를 뿌린다. ‘불훅의 필승조’다. SSG 고효준(40)이 주인공. 과거 김성근(81) 감독의 말이 체감이 되고 있단다.
고효준은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까, 공 하나가 소중하다. 느끼는 것이 많다. 예전에는 좀 안일했다. 돌아보니 느껴진다.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빨리 좀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전에 김성근 감독님이 ‘공 하나가 내 삶의 끝이라 생각하면서 던져라’고 하셨다. 나이를 먹고 보니 딱 맞는 말이다. 깨닫는 순간이 온다.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웃었다.
고효준은 지난 2002년 롯데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지명되면서 프로에 왔다. 올해가 2023년이니 프로 22년차다. 롯데-SK-KIA-롯데를 거쳐 2020시즌 후 방출됐다. 2021년 입단테스트를 거쳐 LG유니폼을 입었고, 1년 만에 다시 방출됐다.
다시 테스트를 받고 SSG에 입단했다. 10년 넘게 몸 담았던 친정 복귀다. 그리고 고효준과 SSG 모두에게 ‘대박’이 됐다. 2022시즌 45경기 38.2이닝, 1승 7홀드, 평균자책점 3.72를 찍었다. SSG의 통합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983년 2월8일생으로 만 40세도 넘어섰다. 한국 나이로는 41살. 그러나 여전히 쌩쌩하다. 평균으로 시속 144㎞를 뿌리고, 슬라이더-커브를 구사한다. 좌완의 이점도 안고 있다. 나이와 무관하게 실력은 정상급이다.
고효준에게 ‘비결’을 물었다. 손사래부터 쳤다. “그런 것 없다. 내가 잘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던질 뿐이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 아는 정도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이어 “올해는 준비한 시간이 많았다. 비시즌 최대한 올려놨다. 웨이트를 많이 했다. 많이 쌓아둔 상태에서 조금씩 빼쓰는 중이다. 최고점을 만들고, 조금 하락하더라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개막전에서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홀드를 챙겼다. 이후 7~9일 한화와 3연전에 모두 등판했다. 0.2이닝 1탈삼진 무실점-0.2이닝 2탈삼진 무실점-1이닝 1탈삼진 무실점을 생산했다. 고효준이 호투하니 팀도 이긴다. SSG의 4연승이다.
특히 8일 한화전에서는 9회 1사 1,2루 위기에서 올라와 브라이언 오그레디-김태연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고 포효했다. 10회초 팀이 결승점을 내면서 고효준이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1승 2홀드, 평균자책점 0이다.
김원형 감독은 “베테랑이라고 하지만, 나이는 상관이 없다. 든든하게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다. 구위가 있지 않나. 경쟁력이 충분하고, 경험도 많다. 단순히 오래 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한 “팀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성실하다. 단순히 오래 뛰었다고 해서 모두가 성실한 것은 아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 뒤에 막아줄 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안정된다”고 짚었다.
이처럼 호평이 쏟아지는데 정작 고효준은 아니라 한다. “나는 그냥 하는 것”이라 한다. 대신 ‘과정’을 말했고, ‘절실함’을 강조했다.
“개막전 때, 경기 전 불펜에서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정작 경기에서 힘이 너무 들어갔다. 가볍게 던졌어야 했다. 반성했다. 결과적으로 무실점이 되더라도, 안 좋은 투구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후배들이 등판해서 잘 던지더라. 반성했다. 결국 내용이 중요하고, 과정에 만족해야 한다. 나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려면 항상 준비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경기에서 최선을 전력으로 내 공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는 무관하다. 실력이 되니까 1군이다. 심지어 필승조, 셋업맨이다. 두 번이나 방출을 당하면서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묵묵히 준비한 끝에 다시 우뚝 섰다.
경기에 맞춰 잘 준비하고, 마운드에 오르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래서 가능하다. 사실 모두가 아는 ‘비결’이지만, 20년 넘게 실행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고효준의 가치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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