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에 고교생 연기, 고향이 전남 강진인데 부산 사투리로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농구 영화’라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확신에 찬 매니저가 “넌 분명히 출연할 거야”라며 건네주는 시나리오를 읽은 뒤 매니저에 대한 고마움이 앞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리바운드(장항준 감독)’에서 배규혁 역을 연기한 그룹 2AM 출신 배우 정진운(32)의 이야기다.

정진운이 연기한 배규혁은 중학교 시절 부상으로 농구의 꿈을 접고 방황하다 초짜 코치 강양현(안재홍 분)의 제안으로 부산중앙고 농구부에 합류한 인물이다.

고질적인 발목 통증을 앓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한 배규혁은 2012년, 단 6명의 선수만 출전한 대한농구협회장배 농구대회에서 투혼을 발휘, 준우승의 기적을 일궜다.

그러나 부상은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현재 배규혁은 대학에 진학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코트를 떠나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학교 때까지 농구선수로 뛰었던 정진운은 배규혁의 사연에 깊이 공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부상으로 농구의 꿈을 접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까지 농구선수로 뛰었다. 하지만 발목 인대만 3번 수술을 받은 뒤 결국 선수생활을 접었다. 이후 전학해 밴드 활동을 하다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수술과 재활 경험이 있으니 재활이 얼마나 힘든지, 재활하고 다시 뛸 때 선수의 자신감과 수비전술, 그리고 당사자가 얼마나 절실한지 더욱 와닿았다.”

캐스팅 과정에서 배규혁이 직접 정진운을 추천하기도 했다. 정진운은 “연예인 농구팀으로 활동할 때 부산중앙고와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졸업생 자격으로 경기장에 온 배규혁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며 “배규혁 선수가 제작진과 작품 관련 인터뷰를 하며 나를 추천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당사자의 추천을 받은 만큼 더욱 철저하게 역할에 몰두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교롭게도 선수 시절 포지션도 배역과 같은 스몰 포워드였다.

정진운은 “배규혁 선수의 습관, 말투, 농구할 때 눈빛과 외적인 터프함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길거리 농구를 하다 강 코치의 입부 제안을 받았던 만큼 거칠고 딱딱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피부톤도 신경 썼다. 실제 경기 영상을 보면 배규혁 선수가 승부처에서 거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볼 수 있다”고 전했다.

10년 전 시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배규혁이 즐겨 신던 브랜드 농구화를 중고로 구입해 신었다. 단종된 신발을 어렵게 찾았지만 밑창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떨어진 신발 밑창을 본드로 붙여 착용했다. 정진운은 “그 신발을 신어야 배규혁 선수가 되는 것 같았다”며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신경 썼다”고 씨익 웃었다.

영화 속 규혁의 방 가구에 붙여진 농구선수들의 스티커도 정진운의 아이디어였다. 당초 제작진은 ‘NBA 전설’ 고(故) 코비 브라이언트의 스티커를 붙였지만, 르브론 제임스를 좋아하는 정진운의 의견에 따라 스티커를 교체했다.

만약 정진운이 학창시절 농구를 계속 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는 “가끔 연예인이 아닌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과연 나는 국가대표가 됐을까. 나 역시 궁금하다”고 했다.

2AM으로 활동하며 비교적 평탄하게 가수활동을 했지만 군 전역 즈음 생각이 많아졌다. 정진운은 “당시 코로나19가 강타했을 때다. 가수들도 공연을 못 하니 전역 후 일을 못하면 어쩌나 싶었다. 군 생활이 적성에 잘 맞아서 1년 정도 직업군인으로 군생활을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회사의 만류로 무사히(?) 전역했다. 그는 전역 전 군마트(PX)에서 티셔츠 등 군용품을 많이 샀다며 “집에서 ‘깔깔이’(야전점퍼 내피)만 입고 혼술할 때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고 독특한 취미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진운은 ‘리바운드’에 이어 12일 개봉하는 영화 ‘나는 여기에 있다(신근호 감독)’에 연거푸 출연하며 연기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다. 농구선수, 가수에 이어 세 번째 직종 전환이다.

정진운은 “가수는 무대에서 3분 동안 자신을 표출해야 하지만 연기는 캐릭터를 고민하고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내 생각이 입혀진 캐릭터를 화면에서 확인하고 에너지를 길게 가지고 간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며 당분간 ‘연기자 정진운’으로서 활약을 예고했다.

mulgae@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