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대표하는 종목으로 떠오른 여자배구는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더 나은 미래와 도약을 위해 한유미 KBSN 해설위원이 자신만의 배구생각을 이야기한다. V리그 출범부터 함께했던 레전드의 시선으로 여자배구를 다양하고 깊이 있게 살펴보자. <편집자주>

5위 아니면 6위. 시즌 개막 전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도로공사의 순위를 이렇게 예상했다. 지난시즌과 비교해 크게 전력이 강화되지 않았고, 외국인 선수의 기량에도 물음표가 붙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하위권이 유력해 보였다. 봄배구에 닿을 가능성은 솔직히 낮다고 생각했다.

그런 한국도로공사가 시즌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도로공사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그 경기를 중계하며 나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경기 내내 흥분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의 명승부였다. 지금까지도 그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국도로공사의 우승을 보며 ‘팀’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사실 경기를 중계하면서도 결국에는 흥국생명이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연경이라는 뛰어난 선수가 있고, 옐레나 역시 잘해준 경기였기 때문에 개인 화력에서 앞서는 흥국생명이 유리하다고 봤다.

하지만 내 예측은 틀렸다. 한국도로공사는 ‘개인’의 기량을 팀의 힘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챔피언결정전 3~5차전을 생각하면 한국도로공사에서는 못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베테랑들이 얼마나 큰 경기에서도 중요한지를 확인했다.

박정아는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시리즈 내내 중요한 순간에 득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유는 ‘평정심’이라고 생각한다.

흥국생명 선수들은 경기 중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점수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 하며 감정의 폭이 크게 요동치는 모습을 봤다.

한국도로공사, 특히 박정아는 달랐다. 득점해도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차분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특유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이런 경기에서는 결국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를 끌고가는 팀이 중요한 순간에 앞서게 된다. 박정아는 이런 힘이 있는 선수다.

배유나는 시즌 베스트7에 걸맞는 활약을 했다. 블로킹, 득점 등 모든 면에서 팀의 중심이 되어줬다. 현대건설의 양효진처럼 어려운 순간에 해결사로 나서는 능력을 발휘했다.

나와 친구인 정대영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날도 나는 대영이에게 “너는 정말 대단하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나이에 그렇게 뛸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리베로 임명옥은 ‘고수’의 실력을 보여줬다. 흥국생명 김해란과의 수비 싸움이 정말 볼 만했다. 두 선수가 워낙 다른 스타일이라 보는 재미가 배가 됐다. 여자배구의 묘미는 수비에 있다. 임명옥의 존재는 한국도로공사 우승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문정원도 기대 이상의 득점까지 해주는 활약으로 힘을 보탰다.

외국인 선수 캣벨도 팀에 활기를 더한 긍정적인 캐릭터였다. 실력뿐 아니라 비교적 차분한 팀 분위기를 밝게 만든 선수라 더 보탬이 됐다고 본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선수로 교체한 한국도로공사와 김종민 감독의 선택이 결국 우승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이 결단이 없었다면 지금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주전 중 유일한 20대인 이윤정은 처음 겪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고 우승 세터가 된 이윤정에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5차전 종료 후 흥국생명 선수들을 보며,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팀을 끌고 온 김연경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됐다.

사실 흥국생명은 김연경이 없으면 우승후보가 될 수 없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선수들의 전력이 확실히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 능력으로 우승의 문턱까지 왔지만 결국에는 팀대팀의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팀의 가치를 증명한 한국도로공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KBSN스포츠 해설위원/여자대표팀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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