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프랭크 토머스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선수였다. 2014년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투표 후보로 등록된 첫 해에 무려 83.7%의 득표율을 받아 당당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덩치가 크고 무시무시한 선수였다. 상대 팀에서 그를 가리켜 ‘빅 허트(Big Hurt)’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키가 무려 196㎝에 몸무게가 125㎏가 나갈 정도로 거인이다.

이렇게 큰 덩치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할 당시에 야구 선수보다는 미식축구 팀에서 콜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와 농구 그리고 미식축구를 번갈아 가면서 운동했던 타고난 천재였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결국 미식축구 팀으로 유명한 어번 대학교로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미식축구보다는 야구에 더 흥미를 갖고 있어 대학시절 야구에 더 집중했다. 여기에 대한 스토리는 지금도 미국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989년 메이저리그 전체 7순위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지명을 받고 2005년까지 16년간 화이트삭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프랭크 토머스를 처음 만난 것이 2000년 내가 화이트삭스에 지도자로 입문했을 때다.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이때 화이트삭스 스프링캠프지는 애리조나 투산이었다. 한 번은 포수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토머스가 직접 포수 연습장까지 찾아와 펑고 배트를 주면서 골프스윙 해보라고했다. 펑고 배트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배트보다 조금 길고 가벼운 배트다.

내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고자 하니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당시 화이트삭스 선수들은 이미 내 소문을 들은 상태였다. 특히 토머스는 홈런 타자이다보니 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펑고 배트를 주면서 한번 골프 스윙하라고 해서 했더니 두 말도 하지 않고 놀라면서 돌아오는 자선골프대회가 있으니 10달러를 내라고 하더라. “왜 10달러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선골프대회 때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선수들이나 프런트 그리고 참가하는 모든 선수들이 10달러를 걸어서 가장 멀리치는 사람이 다 갖는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나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스프링캠프 때나 시즌 때 이런 내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이, 애리조나 투산은 거의 사막으로 되어 있는 도시다. 당연히 골프장도 사막에 만들어져 있는데 얼마나 멋있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골프를 치면서 애리조나 골프장처럼 멋진 골프장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메마른 땅인 사막에서 푸른 잔디로 되어 있는 골프장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역시 메이저리그답게 자선골프대회 때 골프장 전체를 하루 다 빌렸다. 여기에 참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도네이션을 해야 한다. 모든 수입금은 백혈병이나 어린 소년 , 소녀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모두 전달 된다.

이 당시 내가 한국에서 미국에 골프채를 가지고 갈 때만 해도 옛날 골프채였다. 특히 드라이브는 지금처럼 탄력이 좋은 채가 아니라 우드로 된 드라이브 채였다. 이미 골프채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덩치가 좋았다. 무엇보다 이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시즌 때도, 비시즌 때도 골프를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거기에 비해 나는 선수시절부터 골프 쳐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자리 잡혀 있어 많이 치지 못했다. 그런데 2000년도 첫 화이트삭스에 입문 했을 때 제리 메뉴얼 감독이 스프링캠프 올 때 꼭 골프채 갖고 오라는 지시를 했다.

스프링캠프 45일간 훈련 및 경기를 하는데 딱 하루 쉴 때 자선골프대회가 열린다. 이때는 메이저리그 선수들뿐만 아니라 화이트삭스 팀에 소속 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4인 1조가 되어 경기를 치른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이날 참석한 사람들과 한조가 되어야 한다. 나도 당연히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조가 되어 경기를 시작했다. 골프채를 잡지 않은지 오랜 시간이 되어 솔직히 9홀 돌 때까지 드라이브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한 홀 한 홀 돌 때마다 감각이 살아나면서 서서히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날 마지막 코스인 18홀에 ‘롱기스트(Longest)’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조가 마지막 18홀에 도착하게 됐다. 그런데 깜짝 놀란것은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18홀에 모두 서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지 않고 다 나와 구경하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옆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마지막 코스인 18홀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토머스가 소문을 내던 것이다.

“한국에서 온 만수 리가 있는데 펑고 배트를 주었더니 무서울 정도로 스윙이 빠르다”며 소문을 냈던 모양이다. 이 소문으로 인해 과연 한국에서 온 만수 리가 얼마나 멀리 치는지 구경하기 위해 다 나왔다. 내 차례가 되어 멀리 하얀 말뚝이 서 있는것을 보는데 거리가 얼마나 먼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정해진 코스로 날라가지 않으면 실격이 된다.

두 가지가 정확해야 한다. 정해진 코스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하고, 또 멀리 쳐야 등수에 들 수 있다. 가장 멀리 친 선수가 폴 코너코였는데 너무 멀리 말뚝이 서 있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 차례가 되자 속으로 기도했다.

이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나를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길은 솔직히 이 길 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젖 먹었던 힘을 다해 강하게 쳤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날 가장 잘 맞았다. 아니 이전에도 이렇게 잘 친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얼마나 잘 맞았으면 골프공이 날아가는데 중간에 한 번 더 점프해서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까마득하게 보이던 코너코의 깃발보다 더 앞에 떨어지는 이변이 생기고 말았다.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일반 사람들이 탄성을 지르면서 박수쳤다.

이날 1등해서 3개월 동안 아내한테 용돈 받지 않고 푸짐하게 잘 썼다. 또 한 번은 2000년 시즌 중에 똑 같이 자선골프대회가 있어 코칭스태프와 모든 선수들 그리고 도네이션을 많이 내고 참가한 일반 사람들과 한조가 되어 경기에 참가했다.

이날도 똑같이 ‘롱기스트(Longest)’와 ‘니어리스트(Nearest)’ 상이 있었다. 특히 니어리스트 홀에서 홀인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상으로 최신식 SUV 밴츠와 BMW 자동차가 홀마다 걸렸다.

홀마다 참가비로 1달러를 내야만 홀인원 될 때 부상으로 자동차를 가져 갈 수 있다. 나 또한 홀마다 1달러씩 냈다. 부상으로 꼭 최신식 SUV 자동차를 타고 싶었다. 메이저리그라 그런지 스폰서들도 정말 대단했다. 이날도 ‘롱기스트(Longest)’에서 내가 가장 멀리 장타를 쳤다. 그리고 홀인원 하기 위해 1달러씩 냈는데 홀하고 다 벗어났다.

마지막 하나 남은 니어리스트 홀 코스에서 쳤는데 한 조에서 함께 친 사람들이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나도 놀라서 봤다. 볼이 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속으로 ‘제발 들어가라’ 소리 질었는데 홀 컵을 맞고 옆으로 조금 벗어났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만약 들어 갔다면 부상으로 걸렸던 최신식 SUV BMW를 얻었을 것이다.

이날 자선골프대회 모든 경기가 다 끝나고 ‘롱기스트(Longest)’와 ‘니어리스트(Nearest)’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내가 두 개 모두 1등을 했다. 그 부상으로 대형 삼성TV 두 대를 받았다. 한 대는 집에 두고 한 대는 화이트삭스 클럽하우스에 기증했다.

다음날 경기하는데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어제 자선골프대회에서 불펜에 있는 만수 리가 ‘롱기스트(Longest)’와 ‘니어리스트(Nearest)’ 두 개를 다 탔다며 나를 한참 동안 비쳐 주면서 나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했다. 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는데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흥분하면서 전해줬다.

토머스가 한 번은 자기 집에 초청해 찾아갔다. 가르쳐 준 주소로 갔는데 집이 나타나지 않아 몇 번이나 주위를 돌았지만 집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몇 번 돌고 가르쳐 준 주소를 찾았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큰 대문만 보였다. 철창으로 문이 닫혀 있는데 철창 앞에 서 있으니 저절로 문이 열렸다.

열린 철창문으로 들어가는데 집은 보이지 않고 찻길만 보여 안으로 들어갔더니 하얀 대저택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꼭 미국 백악관 같은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잡지에 실릴 정도로 멋지고 잘 지은 집이다.

토머스가 집 안을 구경시켜 주는데 정말 한참이 걸렸다. 집안에 농구장과 수영장이 있고, 실내연습장과 영화관이 있으며, 미용실과 당구장도 있었다. 거실도 넓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토머스와 화이트삭스에서 6년을 같이 지냈다. 언제나 한결 같은 자세로 가족을 사랑하고 야구를 사랑하는 정말 너무 멋진 친구다. 그리고 내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한결 같이 나를 친구처럼 대해줬다. 이제 서로 이역만리 떨어져 있지만 예전 함께했던 화이트삭스에서의 추억들은 아무리 많은 시간들이 흘러도 여전히 생생하다. 옛 친구가 그립다.

이만수 전 SK 감독 ·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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