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4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가수, 아나운서, 성우는 전적으로 목소리로 먹고 사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목소리가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목소리가 듣기 좋아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늘 건강한 자기 목소리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
과로나 병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때는 공연이나 방송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을 해도 지독한 감기로 공연이나 방송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가끔 일어난다.
‘선데이서울’ 238호(5월 6일)는 과로로 목이 막혀 리사이틀 공연이 중단된 한 가수의 참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1973년 4월 24일. 당시 마산, 지금의 창원에서 있었던 가수 김추자 이야기이다.
그녀는 4월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리사이틀 쇼를 했다. 관객 3만4000여 명이 입장하는 대성공이었다. 이는 당시 남자 최고 가수의 리사이틀 관객과 비슷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당시 입장료는 500원, 닷새 동안 올린 수입은 1700여만 원, 서울에 이어 숨돌릴 여유도 없이 나흘 후인 20일부터 부산에서 이틀을 공연한 데 이어 포항, 그리고 24일에는 마산 공연이었다. 문제는 마산에서 일어났다. 그날의 전말을 ‘선데이서울’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날 마산중앙극장에 1000여 명이 입장한 가운데 낮 12시 40분, 1회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김추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어 2시간 뒤인 오후 2시 35분께 등장한 그녀는 두 번째 곡을 반쯤 부르다가 막이 내려지고 말았다.
인기가수 김추자 노래를 듣기 위해 입장했는데 주인공이 1.5곡이라니…. 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은 눈에 보듯 훤하다. “이건 사기다” “입장료 돌려달라” 등등 비난과 야유가 뒤범벅되었을 것이다. 경찰이 출동했고 그러는 사이 2회 공연이 시작되었다. 1회 공연 입장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2회 입장권은 판매가 중단되고 공연 간판을 내리는 등 무대 밖에서도 일대 쇼(?)가 벌어졌다.
2회 공연에서 간신히 2곡을 부른 김추자는 “목이 아파 도저히 노래를 부를 수가 없어요. 목이 낫는 대로 마산을 다시 찾아 와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양해를 구했다.
리사이틀이라 매회 40분 독무대 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목이 아파 노래를 할 수가 없다는데 관객인들 어찌할 것인가? 그날 두 세곡 들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초유의 사태는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목소리가 생명인 가수의 건강보다 흥행 수입을 앞세워 무리하게 공연 일정을 잡은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이런 공연은 하루 4회가 일반적이었다. 리사이틀 주인공 김추자는 매회 40분에 10곡 정도를 불러야 했으니 이는 하루 40곡을 부르는 셈, 보통 체력으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5일 동안 서울 공연을 가진 데다 충분한 휴식 없이 사나흘 후에 지방 공연에 나선 강행군, 한 곡의 노래도 혼신으로 불러야 하는 주인공이니 몸의 피로와 함께 목소리에 무리가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로 상경해 입원한 그녀는 한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었고, 하지 못한 쇼는 6~7월에 속개하는 것으로 했다. 9개 도시를 돌면서 가질 예정이던 공연이 세 번째 도시에서 이런 사달이 났으니 다음 공연지는 공연 취소에다 팔았던 입장권 환불 등으로 홍역을 치렀을 것이다.
체육관이나 문화회관 등 대형 공연장에서 주로 콘서트가 열리는 요즘과 달리 당시 쇼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서 주로 했다. 공연 펑크로 극장 측은 당장 상영할 영화도 찾아야 했을 것이고 여파가 만만찮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목이 아파 도저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공연 중단 사고, 이를 두고 흥행을 주관하던 쇼 단장들은 ‘리사이틀 쇼 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50년 전 이 일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의 목소리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이때 마치지 못한 나머지 공연에 나선 김추자는 한 달 후인 5월 25일부터 10여 일을 순회공연하고 6월 2일 서울로 돌아왔다고 ‘선데이서울’은 전했다. 김추자가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 무렵 ‘선데이서울’을 보면 폭발적인 가창력, 파격적인 춤, 독특한 창법, 과감한 패션 등 가수 김추자 기사가 참 많았다. 1960~70년대 무렵의 전통적 트로트와는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는 가수였다.
1969년, 작곡자이자 가수였던 신중현의 곡 ‘늦기 전에’로 데뷔, 1970년 ‘님은 먼곳에’, 1971년 ‘거짓말이야’, 1974년 ‘무인도’ 등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우리나라 군대의 월남(베트남)전 파병이라는 당시 시대상이 투영되어 크게 히트했다.
하지만 김추자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1975년 활동을 접었고 그 후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면서도 팬들과 완전 단절, 완전 은퇴는 아니었다. 1986년 2월에는 KBS TV ‘쇼! 김추자 스페셜’에 출연해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다.
데뷔 45주년이 되던 2014년 5월에는 잠실체육관에서 ‘김추자 콘서트 -늦기 전에’를 이틀간 공연했다. 그해 앨범을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그녀는 아주 가끔이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 앞에 나타나 노래 갈증을 풀어주었다.
작곡가 신중현은 김추자를 “다른 가수가 할 수 없는, 하기 어려운 창법, 판소리 창법까지 소화해내는 가수”라고 칭찬했다.
인기 가도를 질주하고 있을 1970년대 초, 얼마나 노래를 잘했으면 당시 최고 인기였던 담배와 대련시켜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고 했을까. 또 노래하며 춤추는 그녀의 멋진 춤사위를 이름과 연결 지은 ‘춤추자’라는 말은 그녀의 상징어였다.
50년 전,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가수 김추자. 알려진 근황은 없지만, 만날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팬이 여전히 많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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