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황혜정기자]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도 내가 뛰는 걸 몰랐다고 하더라. (그걸 듣고 스스로)대단한 것을 한 느낌이었다.”

2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 KIA타이거즈의 9회초 2사 만루. 모두의 시선은 당연히 마운드 위 LG 투수 함덕주와 타석의 KIA 한승택에 쏠렸다. 2사 만루에 게다가 1볼-2스트라이크 상황이었다. 함덕주가 어떤 공을 던지냐, 또한 한승택이 이 공에 스윙을 하느냐 여부에 따라 이닝이 그대로 종료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오로지 투수와 타자에 쏠린 그 순간, 3루에 있던 대주자 김규성(26)이 뛰었다. LG 수비진은 물론, 투수 함덕주 그리고 중계 카메라와 관중들은 물론 팀 동료들까지 김규성이 뛰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다. 김규성은 그렇게 모두를 속이고 여유롭게 홈으로 파고들었다.

경기 후 김규성은 당시 상황에 대해 “조재영 작전·주루 코치님께서 뛰라는 사인을 주셨다. 당시 3루 수비수가 뒤로 멀리 가 있었고, 상대 투수가 왼손이었다. 또 만원 관중이 들어차 함성 소리가 컸는데, 소리가 크면 아무래도 LG 선수들끼리 콜플레이가 잘 안 들려서 홈에서 세이프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해주셨다“고 설명했다.

김규성은 평소에 조재영 코치와 함덕주의 습관을 파악한 것이 이번 홈스틸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함덕주 선수는)포수의 사인을 보고 나서 공을 던지기 전에 1루 방향을 본다. 그 순간에 뛰면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함덕주가 1루 방향을 보자마자 그때 뛰었다”고 했다. 왼손 투수인 함덕주의 특징과 공 던지기 직전의 습관을 이용한 전략인 것이다.

함덕주가 1루만 쳐다보고 있다가 홈으로 쇄도하던 김규성을 뒤늦게 발견했다. 함덕주가 황급히 공을 던졌을 땐 이미 김규성이 홈에 들어온 상태였다. 김규성은 “홈 앞에서 슬라이딩을 하려고 했는데 공이 아직도 안 오더라. 그래도 일단 슬라이딩 했는데 공이 안 와 있길래 그때 살았다 싶더라”며 미소지었다.

팀 동료들도 기습 홈스틸에 깜짝 놀라하며 크게 기뻐했다. 김규성은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도 내가 뛰는 걸 몰랐다고 하더라. (그걸 듣고 스스로)대단한 것을 한 느낌이었다”며 “김선빈 형이 LG 쪽도, 우리 쪽도 아무도 모르게 뛰었다고 하시더라”며 활짝 웃었다.

김규성의 홈스틸은 단독 스틸로 인정받지 못했다. 1·2루에 있던 다른 주자 2명도 함께 뛰었기 때문이다. ‘단독 홈스틸’에서 기록이 정정되며 ‘삼중 도루’로 공식 기록됐다. ‘삼중도루’는 프로야구 41년 역사에서 역대 7번째 기록이다. KIA에선 최초 기록이다.

“영광스럽다”는 김규성은 매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난 26일 NC 다이노스전에서는 3점 홈런을 뽑아내며 시즌 1호포를 쏘아올렸다. 29일에는 승부에 쐐기를 박는 홈스틸을 성공시켰다.

김규성은 최근 자신의 활약에 대해 몸을 낮추며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래서 경기에 나갈 때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런 것이 최근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경기들이)나에게는 지금도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과정이다. 많은 것을 배우면서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KIA는 이날 선발 투수 숀 앤더슨의 호투와 김규성의 깜짝 홈스틸에 힘입어 LG를 6-3으로 꺾고 4연승을 내달렸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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