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5-8’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인물인데, 저 또한 모든 사람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행복할 의무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에서 전설의 택배기사 ‘5-8’을 연기한 배우 김우빈은 45분의 인터뷰 내내 ‘행복’과 ‘감사’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지난 2017년 5월 비인두암 판정을 받았던 그는 2019년 완치판정을 받을 때까지 2년간 카메라 앞을 떠났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할 수 없던 시간의 답답함과 조바심은 역으로 김우빈에게 삶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게 했다.

매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간단한 감사 일기를 쓴다는 김우빈은 “전날 밤에 잠을 잘 잘 수 있어 감사하다. 맑은 날씨에 감사하다”고 했다. 일상의 사소함조차 ‘사소함’이 아니라는 걸 알게된 이의 마음가짐이다.

그가 주연을 맡은 ‘택배기사’ 역시 환경,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작품이다.

이윤균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은 혜성 충돌로 사막으로 변한 한반도가 배경이다. 살아남은 인구는 단 1%,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 살 수 없고, 그마저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지급되지 않는다.

빈익빈부익부. 가진 자들, 선택받은 자들은 산소를 차지하지만 난민 출신들은 이마저도 요원하다. 생존의 필수품마저 갖기 힘들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마저 끊긴 시대, 김우빈은 인류의 생필품이 돼버린 산소를 배송하는 택배기사 ‘5-8’을 연기한다.

‘5-8’ 역시 난민 출신이다. 그는 밤이 되면 기사(블랙 나이트)로 변해 자경단처럼 난민을 보호하고 생필품을 보급한다. 김우빈은 “‘5-8’은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있는 사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잘 살지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접근했다”라며 “이 역할을 통해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모습보다 ‘5-8’의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세계는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아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다. 작품의 절반 이상은 출연진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 영화 ‘마스터’를 함께 한 조의석 감독에게 ‘택배기사’ 시나리오를 받았던 김우빈은 “우리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던 세상에 살고 있었던 때라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실상 이 마스크는 흔히 착용하는 KF94 마스크가 아니라 모형을 활용한 소품이다. 그러다보니 대사를 전달할 때도 어려움을 겪었다. 김우빈은 “마스크의 기능이 거의 없는 소품이라 호흡하기도 어렵고 비오는 날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대사전달력도 떨어졌다”라며 “마스크를 쓰고 액션신을 촬영할 때 마스크가 얼굴 위에서 움직이다보니 얼굴에 접착제를 붙인 채 연기하기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마스크를 얼굴에서 떼어낼 때는 살짝 아팠다”고 싱긋 웃었다.

작품마다 매 회 등장하는 흡연신과 액션 장면 역시 스태프들의 깊은 배려로 무난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특히 흡연 장면은 비인두암 투병 전력이 있는 김우빈을 위해 아예 모형 담배를 제작하고 CG로 연기를 처리하기도 했다.

김우빈은 “감독님께서 제가 아팠던 걸 알기 때문에 처음에는 흡연 장면을 빼겠다 하셨다. 그런데 대본을 읽을수록 ‘5-8’과 흡연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만약 CG로 가능하면 연기해보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셨다”라고 설명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모형 담배를 들고 연기했어요. 연기가 눈에 들어가서 눈이 따가울 시점, 담뱃재가 옷에 떨어져 털어내는 시점을 계산하며 연기했죠. 다행히 ‘택배기사’ 촬영 전 영화 ‘외계+인’ 촬영을 하며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게 익숙한 상태였어요. 결과물을 보니 진짜 담배같아 보여서 감사했어요. 혹여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흡연신은 모두 CG’라고 미리 말씀드렸죠.”

액션신 촬영을 위해서는 몸무게를 3㎏ 증량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우빈은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보다 ‘할 수 있다’고 다짐해야 몸을 움직일 때 더 도움이 많이 된다. 무엇보다 액션은 연습만이 답이기 때문에 미리 연습하고 현장에서 만들어 나갔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술팀이 ‘마스터’에서 호흡을 맞춘 스태프들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리액션이 중요한데 내가 어설프게 쳐도 형들이 잘 받아줘서 장면이 살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이러한 과정 덕에 ‘택배기사’는 지난 14일 글로벌 공개 후 사흘만에 총 3122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김우빈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분들께 소개시켜드리자는 게 목표였는데 많이 봐주셔서 놀랐다. 감사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인생에서 가장 절정의 시기를 투병으로 보낸 김우빈은 매번 “몸은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배려가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올 법도 하지만 김우빈은 “아프기 전보다 지금 몸상태가 더 좋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건강할 것”이라고 자신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회복하고, 더불어 가장 튼튼해진 그의 존재가 ‘5-8’마냥 자못 든든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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