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화성=황혜정기자] 2016년 세계야구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 2회 말까지 0-5로 끌려갔다. 그러나 타선의 끈질긴 집중력과 구원 등판한 투수 김라경의 호투를 묶어 감격스러운 9-8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6회 1사 만루에서 8-8 동점 적시타를 터트린 이빛나(33)는 2016년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이래로 꾸준히 발탁된 8년 차 국가대표다.
홍콩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야구 아시안컵(BFA)에 출전하는 이빛나는 이번 대회까지 총 5번의 국제대회를 경험하게 된다. 20명의 대표팀 선수 중 최다 출전 기록이다.
국제대회 경험이 가장 많은 그지만, 여전히 대회를 앞두고 떨린다고 했다. 이빛나는 “경기장에 들어서 애국가가 시작되면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다.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를 듣는 것은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떨린다”라며 미소 지었다.
국가대표 8년 차 베테랑이지만 태극마크의 의미는 매번 달라진다. “매해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처음에는 마냥 대표팀에 뽑히고 싶었어요. 그런데 4년 차가 넘어가면서 제 성장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포수 이빛나는 매년 목표를 정한다. 지난해 타격에 중점을 두고 겨우내 훈련을 해왔다면, 올해는 수비 연습이다. 30대가 되고부턴 어린 친구들에 밀리지 않은 체력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그렇게 매해 발전했고, 8년 동안 대표팀 포수 2~3자리 중 한 자리는 항상 이빛나의 것이었다.
대표팀 허일상 배터리 코치는 “이빛나가 정말 강한 어깨를 가졌다. 캐칭도, 블로킹도 다 좋다”라고 평했다. 이빛나는 대표팀 훈련 도중 종종 강한 어깨를 활용해 1루에서 2루로 뛰는 주자를 잡아낸다. 여자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이빛나가 도루를 저지하자 지켜보던 대표팀 양상문 감독이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올해 선발된 여자야구 대표팀 투수 8명 중 5명이 10대 후반 선수들이다. 투수진 평균 나이는 19.7세에 불과하다. 만 33세 베테랑 포수 이빛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대표팀의 어린 투수들이 공은 정말 좋다. 대표팀에서 가장 힘도 있고, 공이 끝까지 쭉 살아 들어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곧잘 긴장하고 흔들린다. 그래서 이 친구들과 배터리 호흡을 맞출 땐 편하게 던지도록 홈 플레이트 꽉 차게 앉는다.” 이빛나만의 투수 리드 방법이다.
이빛나의 전략은 ‘공격적인 볼 배합’이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하이볼보다는 존 안으로 무조건 집어넣게 한다. 그러다가 유인구로 떨어지는 변화구 하나씩을 집어넣는다.”
투수가 흔들릴 때 마운드에 올라가 안정시키는 것도 포수의 역할이다. 막상 이빛나가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들에 하는 이야기는 일상적인 이야기다.“‘오늘 저녁 뭐 먹을래? 저녁 먹을 거 생각하면서 던져’라고 말한다. 그만큼 편하게 던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노력과 열정이 빛나!’
이빛나의 정강이 보호 장비에 적힌 글귀다. ‘이빛나’라는 이름을 활용해 친구가 선물한 응원의 문구다. 실제로 이빛나는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가지고 묵묵히 달려온 노력파 선수다. 생업으로 레슨장을 다닐 새도 없다. 그래도 짬을 내 주차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른다.
이빛나는 2010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국내 여자야구는 막 발걸음을 떼던 때였다.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WBAK)가 창설됐고, 2008년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을 처음으로 운영했다. 야구를 하는 여성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시절, 전국에 팀도 몇 개 없었지만 20살 이빛나는 운명처럼 야구를 시작해 야구와 운명공동체가 됐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직업도 바꿨다.
포수직에 대한 애정도 강하다. 통상 장비도 무겁고 앉아 있어야 해 포수는 남녀 선수 통틀어 인기 포지션이 아니다. 특히 여자야구에서는 기피 경향이 더 심하다. 그러나 이빛나는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 중에 유일하게 우리 선수들을 모두 볼 수 있는 위치잖나. 그라운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 자리가 나는 정말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포수를 하며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어쩌면 올해가 여자야구 한 세대를 함께했던 베테랑 포수의 ‘라스트 댄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물려줘야지요. 이제 대표팀은 세대교체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그다음 국제대회를 준비해가야 합니다. 지금 사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올해가 마지막이란 각오로 버티고 있어요. 저를 포함해 대표팀 30대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남다릅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기에, 이빛나는 여자야구 대표팀의 아시안컵 사상 최고 성적을 노린다. 종전 최고 성적은 2017년 BFA컵 3위다. “은메달을 목에 꼭 걸고 오고 싶어요. 대진표가 말도 안 되게 편파적으로 짜였지만 보란 듯이 다 이기고 결승까지 올라가고 싶습니다.” 이제, 완벽한 라스트 댄스를 위한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et16@sportsseoul.com
2023년도 BFA컵 경기 일정 (한국시간 기준)
26일 오후 12시=일본(세계랭킹 1위)
27일 오전 10시=인도네시아(세계랭킹 미집계)
28일 오전 10시=필리핀(세계랭킹 14위)
*대한민국(세계랭킹 10위)
*각 조 2위까지 슈퍼라운드 진출(세계대회 출전권 확보)
29일=공식 휴식일
*이하 시간 미정
30일=순위 결정 1차전
31일=순위 결정 2차전
6월1일=메달 결정전
2023년도 BFA컵 특이사항
*7이닝제, 동점시 승부치기 시행
*콜드게임: 4회 15점 차, 5회 10점 차 (결승전 제외)
*중계 링크: BFA컵 공식 사이트(hkbaseball.ocgl.live)
*실시간 영상 중계는 유료(대표팀 조별리그 3경기 선택 시 105홍콩달러(약 1만7600원))
*실시간 문자 중계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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