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6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일선 형사들이 나누는 방담 ‘신문에 안 난 뉴스-형사들의 사건 비화’에 실린 짤막하지만 기발하고 대단한 노력형(?) 도둑들 이야기이다. ‘선데이서울’ 244호(1973년 6월 17일) 에는 신출귀몰 절도범을 잡은 사연이 실렸다.

50년 전, 서울 필동과 장충동 일대에서 활약한 절도범이 잡혔는데, 그 범죄 수법에 형사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절도’란 상대의 허술함이나 방심을 노린다. 남의 집을 터는 가장 좋은 시간은 집이 비었을 때나 사람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다. 그래서 깊은 밤 중이나 휴가철 불 꺼진 집 등이 좋은 표적이라는 것쯤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절도범은 사람이 있는 집, 불이 켜진 집도 가리지 않았다. 범행 시간도 대담하게 초저녁인 밤 8시부터 10시 무렵 물건을 챙겨 유유히 나왔다는 것.

당시는 대부분 단독 주택이라 방범이 좀 허술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TV가 귀하던 시절이라 온 식구가 브라운관 앞에 모여 드라마를 보곤했다. 요즘처럼 휴대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기기로 각자의 취향껏 1인 시청을 하는 시대와는 사뭇 달랐다.

TV드라마에 정신이 온통 쏠려 있을 때,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TV 소리나 불빛은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마음 놓고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집에 사람이 있었지만, TV에 빠져 무관심했을 것이니 그랬을 법도 했다.

또 시골은 TV가 있는 한 두 집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영화관람 하듯 TV를 보곤 했으니 더 쉬웠다. 그 시간에 불이 꺼진 집은 ‘내가 집을 비웠습니다’하고 광고하는 셈이었다. 결국 도둑이 마음 놓고 작업할 여건과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주었던 것.

문제의 도둑은 이처럼 인기 드라마가 방송되는 TV 황금 시간대를 간파해 절도에 이용한 일종의 과학도(科學盜)였던 셈이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TV 초창기에는 이런 절도가 더러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TBC 일일연속극 ‘아씨’를 이야기할 때면 오르내리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1970년 3월 2일부터 1971년 1월 9일까지 방송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높았던지 여기저기에서 드라마 ‘아씨’를 보다가 도둑을 맞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TBC는 대략 이런 자막을 내보낸 후 드라마를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문 단속, 물 단속은 잘 되었는지 확인한 후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넋 놓고 드라마를 보다 도둑을 맞거나, 수도꼭지 잠그는 것을 깜빡하고 TV 앞으로 달려간 일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런 자막까지 내보냈을까. 물론 방송사는 그 정도 인기가 있는 드라마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고, 화제로 삼고 싶은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인기 드라마 방송 시간이면 수돗물 사용량이 급격하게 줄었다거나 서울 시내 거리가 한산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 드라마는 한 시대의 일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도둑은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전당포만 털어 일 년에 3억6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품을 훔친 간 큰 도둑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돈이 궁한 사람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전당포였다. 차고 있는 시계를 잡히기도 하고 입고 있던 양복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니 전당포에는 이런 값나가는 물건과 현금이 많았다. 작업에 들어가기만 하면 허탕 칠 일은 거의 없었다.

1973년 6월, 전당포를 1년에 24개나 턴 전당포 전문 털이범이 잡혔다. 이들은 일단 목표를 정하면 똑같은 금고를 사서 여는 연습만 무려 6개월을 계속했다. 사용 장비만도 20여 종류였다. 붙잡히기 전 마지막 범죄는 을지로 6가의 한 전당포로 출입문과 캐비닛 등에 비상벨이 있었지만 850만 원어치를 털어가는 내내 비상벨은 한번도 작동하지 않았다.

도둑들은 출입문이 아닌 창고 옆 담을 뚫고 들어갔고 미리 파악해 둔 비상벨은 연습한 대로 들고 간 연장으로 살짝 돌려 놓았던 것. 아무리 절도가 생업(?)이라지만 이 정도면 대단한 장인 정신이다.

요즘은 방범 기술도 발전해 비상벨 대신 CCTV가 전국을 감시하고 있다. 전당포 자체 CCTV가 작동하지 않아도 큰 길은 물론, 들어오는 골목, 건물까지 감시가 촘촘하다. 저녁 드라마 시간을 노린 옛날 도둑과 달리 요즘 도둑은 어떤 머리를 굴리고 있을까 궁금하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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