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올 초에는 모두가 ‘연진아’를 외쳤는데 이제는 ‘차정숙’을 얘기하곤 해요.”

자체 최고 시청률 18.5%(닐슨코리아 기준)로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JTBC ‘닥터 차정숙(이하 ‘차정숙’)’을 연출한 김대진 PD는 ‘차정숙’의 인기를 새삼 실감한다고 했다.

고려대학교 출신인 김 PD는 최근 엄정화가 tvN ‘댄스가수유랑단’ 녹화 차 모교 축제 무대에 선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축제 현장을 찾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 누군지 알아요?”라고 묻는 엄정화의 질문에 젊은 대학생들이 “차정숙”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에 분리수거 하러 쓰레기장에 내려갔다가 동네 주민에게 ‘드라마 잘 보고 있다’는 인사를 받았다”라며 “연출자인 나도 이런 인사를 받으니 배우들은 오죽하겠나”라고 웃었다.

◇젊은 신인 배우 눈물 연기 위해 말없이 안아준 엄정화

김 PD는 ‘차정숙’의 인기비결을 단연 배우들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날 촬영을 하다 엄정화가 딸 서이랑 역을 맡은 이서연을 살포시 안아준 기억을 떠올렸다. 정숙의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가 반대한 미대 진학을 준비하다 들켜 호되게 혼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장면이었다.

과거 추운 겨울 사극을 촬영하다 끝내 눈물을 흘리지 못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던 이서연에게 우는 연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젊은 배우인 이서연을 아꼈던 김 PD는 “이랑이가 자존심이 센 인물로 설정됐으니 서연이가 힘들면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된다”고 배우를 다독였다.

끝내 이서연이 눈물을 흘리지 못해 마지막 촬영신으로 ‘오케이 컷’을 따려던 찰나, 엄정화가 나섰다. “감독님, 한번만 더 가요.” 김 PD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배우를 믿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촬영장 문을 열고 들어선 김 PD의 눈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엄정화가 이서연을 꼬옥 안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스태프들은 이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결국 이서연은 누구보다 서럽게 우는 연기에 성공했다.

김 PD는 “아마 촬영 중 가장 큰 목소리로 ‘오케이’를 외친 신이었다”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비단 이서연과 에피소드 뿐만 아니다. 엄정화는 모든 조·단역 배우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기울였다.

김 PD는 “한번은 택시를 타는 장면에서 택시기사 역할을 맡은 단역배우와 실제 대화를 나누시더라. 그 배우가 알고보니 성우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엄정화는 특유의 따뜻함 때문에 전국민을 사로잡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승희(명세빈 분)와 불륜으로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정숙의 남편 역 김병철에 대해서는 “원래 연기 잘 하는 배우인 건 알았는데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라며 “드라마 중반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을 못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김병철을 알아봐줬다”라고 흐뭇해했다.

과거 책받침 여신이던 명세빈의 연기 변신과 뮤지컬계 원톱 배우 민우혁의 열연, 이서연, 조아람, 송지호 등 젊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김 PD는 “외부에서 ‘차정숙’에 대해 ‘가성비’가 훌륭한 드라마라고 말하곤 한다. 그 흔한 한류스타 한 명 없이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심비’가 더 훌륭한 드라마”라고 자평했다.

◇MBC에서 편성 거절 당하기도...편한 드라마에 목마른 엔데믹 시청자 갈증 채워

‘차정숙’은 당초 MBC 편성을 타진했지만 거절 당했다. 제작비가 많이 든 드라마도 아니었다. 결국 JTBC에 편성되면서 2022년 10월 방송에서 2023년 4월로 방송시기가 다소 늦춰졌다. 이게 신의 한수였다.

김 PD는 “촬영할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때는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이런저런 드라마를 많이 보다보니 전문직 드라마가 인기였다. 하지만 엔데믹이 되자 패턴이 달라졌다. 외부 놀거리를 찾기 시작한 시청자들은 편하게 소파에 기대서 보는 드라마를 원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차정숙’은 세계관이 특별하거나 의사라는 전문 직종을 심도있게 파헤치는 드라마가 아니다. 일상에서 공감대를 끌어냈지만 평범한 주부의 의사 도전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판타지도 충족시켰다.

김 PD는 일부 시청자들이 불편하다고 지적한 서인호와 최승희의 불륜에 대해서는 “차정숙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의 장애물”이라고 설명하며 “우리가 아무리 불륜을 세게 표현해도 ‘부부의 세계’를 넘을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크론병 논란, 시청자들께 죄송...넷플릭스 등 계약 관계 얽혀

잘 나가던 ‘차정숙’도 위기가 있었다. 7회에서 크론병에 걸린 사위에게 장인이 “못된 병, 나쁜 병”등의 막말을 던지는 장면이 크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작진이 뒤늦게 사과했지만 해당 장면이 삭제되지 않아 논란을 가중시켰다.

“제작진의 잘못입니다. 원래 의도는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남자친구를 향해 감정적인 말을 쏟아냈다는 의도였어요. 대본 어딘가에 ‘막말’이었다는 장치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저희가 미흡했죠.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해당 장면 송출과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와 계약관계로 얽혀있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김 PD는 “‘차정숙’이 넷플릭스와 공급계약을 마쳐 수정이 쉽지 않다. 국내에서 문제가 된다고 해당 장면을 삭제할 겨우 자막, 러닝타임 등 계약서상 여러 부분을 미국 법률을 토대로 수정해야 한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PD는 “대한민국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깊고 몰입도도 강하다.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더라도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때도 많다”라며 “제작자들도 더 유의하겠으니 시청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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