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노박 조코비치는 항상 빌런(villain·악당)이었다.”
지난 1987년 윔블던 남자단식 챔피언인 팻 캐시(호주)가 한 말이다. 16일(현지시간) 열린 2023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을 <BBC 라디오 5 라이브>가 생중계할 때 그가 경기 초반 내놓은 멘트다.
“우리가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로저) 페더러, (앤디) 머리, 그리고 (라파엘) 나달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승후보였고, 그래서 조코비치는 항상 빌런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선수의 우승을 바라기 때문에, 조코비치는 다시 빌런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곧바로 “조코비치한테 미안하다. 빌런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저 훌륭한 선수”라고 발을 뺐다.
해설 중 공식적으로 발언으로는 부적절했으나, 특정 선수의 챔피언 독식보다 새로운 젊은 챔피언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로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를 포함한 이른바 ‘빅4’(페더러, 나달, 머리)가 지난 2022년부터 무려 21년 동안 윔블던 남자단식 우승트로피를 나눠 가졌으니, 정서적으로는 그럴 만도 한 것이다.
물론 윔블던 5연패에다 개인통산 8회을 노리는 위대한 조코비치의 쾌거를 고대하는 팬들도 무척 많았다.
그러나 윔블던 잔디코트에서 불꽃을 튀긴 이날 4시간42분 동안의 접전은 조코비치보다 16살이나 어린 알카라스의 3-2(1-6, 7-6<8-6>, 6-1, 3-6, 6-4) 승리였고, 그는 20세의 나이에 처음 윔블던 챔피언이 됐다.
조코비치는 경기 뒤 “알카라스는 완벽한 선수다. 슬라이딩 백핸드는 나와 유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랜드슬램 남자단식에서 23회 우승(역대 최다)을 차지한 조코비치는 전세계의 테니스팬들이 지켜보는 결승에서 위대한 선수 답지 않아 보이는 행태를 보여줘 아쉬움을 남겼다.
서브를 넣기 전, 공을 네트 바닥에 10번 안팎, 최대 15~16회까지 튕겨 호흡을 가다듬는, 상대의 리턴샷 리듬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그의 루틴은 이번에도 계속됐다. 그래서 정해진 서브 타임을 놓쳐 체어 엠파이어로부터 한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다.
또한 5세트 게임스코어 1-1 상황에서 알카라스한테 자신의 서브게임을 브레이크 당하자,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네트를 받치고 있는 기둥에 라켓를 때려부수는 비매너까지 보여줬다. 주심이 바로 아래 있는 네트기둥이었다.
지난 2020 US오픈 남자단식 16강전 때 분풀이로 공을 라켓으로 쳐 뒤로 보내 공교롭게 여성 선심의 목을 맞춘 전력이 있는 조코비치다. 결국 그는 당시 실격패를 당하고 말았다.
조코비치는 이번 결승전 세트스코어 1-2로 뒤진 가운데 맞은 4세트에서는 왼쪽 허벅지를 라켓으로 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4세트를 6-3으로 따내 트릭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조코비치는 기록상으로는 동시대의 경쟁자 페더러와 나달을 넘어섰고 역대 최다 그랜드슬램 우승으로 이른바 GOATS(Greatest of all times)로 불릴 만도 하다.
그럼에도 그가 코트에서 보여주는 비매너는 그런 위대성을 훼손시키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위대한 선수한테 훌륭한 품성과 인격까지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kkm100@sportsseoul.com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