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대한축구협회(KFA)는 FA컵을 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 K리그에 몸담은 복수 관계자의 따끔한 지적이다. KFA는 지난 16일 FA컵 준결승, 결승 일정을 새로 확정해 발표했다. 11월1일 준결승전을 치르고, 홈 앤드 어웨이로 예정된 결승전을 4일 단판으로 소화하기로 했다.

올해 FA컵 준결승전은 꼬일 대로 꼬였다. 지난 9일 두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전북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전은 잼버리 사태로, 제주 유나이티드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는 태풍으로 연기됐다.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병행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팀에 난감한 상황이 됐다. 당장 준결승전 날짜를 잡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제주와 포항은 9월 A매치 휴식기를 이용해 치르는 안에 무게를 실었다. 대표팀에 차출되는 선수가 많지 않은 만큼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제는 잼버리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전북과 인천이다. 전북은 A대표팀 차출 선수가 많아 9월 경기에 반대했다. 인천은 8월 말 일정이 빡빡해 9월을 원했다.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KFA는 대회 도중 결승전 방식을 바꾸는 극단적인 해결안을 내놨다. FA컵 대회규정 제12조 ‘대회방식’ 중 ‘결승전의 경우 경기 일정에 따라 단판으로 진행될 수 있다’라는 조항을 내세웠다.

KFA 결정을 두고 K리그 관계자, 특히 준결승을 치르는 네 구단은 한숨을 내쉰다. 제주와 포항의 경우 협회 미팅을 통해 9월에 동의하다시피 했는데, 엉뚱하게 회의에서 나오지도 않은 11월에 경기를 뛰게 됐다. 두 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결론.

KFA는 준결승전 두 경기를 같은 날 치러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난 9일 경기는 왜 킥오프 직전까지 갔는지 의문이라는 게 K리그 관계자의 질문이다.

전북과 인천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다. 원래 이 안은 두 팀 회의 도중 한 팀에서 꺼낸 제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팀은 11월1일 준결승전을 치르고 4일 결승 1차전을, 그리고 12월에 2차전을 치르자고 제안했는데 KFA는 결승전을 아예 축소해 한 경기로 대회를 마무리하는 예상 밖 결론을 들고나왔다.

결정 후 대응도 황당하다. KFA는 최초 보도자료엔 ‘4개 구단 모두의 합의로 채택됐다’라고 설명했는데 이후 ‘일정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구단에 알리고 발표했다’고 수정했다. ‘타이틀 후원사인 하나은행 측도 대승적으로 동의했다’던 표현은 ‘하나은행 측에 양해를 구했다’로 바뀌었다. 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련의 과정으로 KFA는 스스로 FA컵 권위를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K리그가 평균 1만 관중을 유지하는 흥행 속에서 최대 이벤트인 결승전 한 경기를 공중으로 날려버리는 결정은 상상하기 어려운 ‘막가파식’ 행정이라는 게 대다수 관계자의 지적이다.

FA컵을 취재하다 보면 기본적인 유니폼 준비 실수부터 사소하게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경기 도중 트랙에 배달 오토바이가 등장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K리그 관계자들은 FA컵을 ‘결승전만 하는 대회’로 인식한다. FA컵의 권위를 이 정도밖에 형성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KFA에 있다.

한 관계자는 “사실 FA컵은 결승전이 전부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중요한 결승전 한 경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라며 “오히려 KFA가 FA컵을 하기 싫어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KFA는 원래 FA컵을 소홀하게 여겼다. 대회 도중 일어나는 일을 보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알려지지 않은 행정 실수가 많이 나온다. 대회를 주최하는 KFA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최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KFA도 잼버리 사태의 피해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진짜 실력이 나온다. 한국 축구를 책임지는 최상위 결정 기관이라면 이 정도의 변수는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언제 권위, 위상으로 가득 찬 FA컵을 볼 수 있을까.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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