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배우는 출연작이 없으면 백수나 마찬가지입니다. 출산 후 2년 정도 공백기를 겪어서 ‘잔혹한 인턴’의 고해라에게 더욱 공감했어요.”

티빙 오리지널 ‘잔혹한 인턴’에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라미란은 자신의 무명시절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과거 출산 뒤 모유수유를 하던 중 영화 ‘친절한 금자씨’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전화를 받자 젖먹이 아이를 들쳐 업고 오디션을 치른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만큼 연기와 카메라 앞이 간절했기에 ‘잔혹한 인턴’의 고해라 역에 더욱 진심이었는지 모른다.

라미란이 연기한 고해라는 출산 후에도 상품기획자(MD)로 승승장구하지만, 육아를 돕던 친정어머니가 쓰러지면서 타의로 사직서를 제출한다.

7년의 경력단절을 겪은 고해라는 40대 경단녀라는 이유로 번번이 재취업에 실패하다 입사 동기 최지원의 권유로 인턴사원으로 입사한다. 최지원은 고해라에게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쓰려는 직원들을 퇴사하도록 유도하면 과장직급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라미란은 “출산 전 고해라는 승진을 위해 ‘임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각서를 쓸 정도로 간절한 사람이었다. 출산 후 7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껍데기를 벗게 됐다”며 “고해라의 이야기에 ‘공감된다’는 댓글을 볼 때면 슬프고 씁쓸하다. 그래도 경력이 단절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라미란은 자신의 경력단절 시기에 대해 “호프집 서빙, 공연 스태프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털어놓았다.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만 하루 종일 아기만 보고 있어야 했어요. 과연 누가 나를 불러줄까, 일이 없어지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하고 싶은데...2년이 지나니 불안함이 커졌죠.”

‘친절한 금자씨’ 이후 18년동안 라미란은 90편이 넘는 영화·드라마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장 긴 시간 출연했던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라과장, 그를 스타덤에 올린 tvN ‘응답하라 1988’(2015)의 정겨운 치타 여사, tvN ‘부암동 복수자들’(2017)의 생선장수, tvN ‘블랙독’(2019)의 진학교사, 티빙 ‘내과 박원장’의 사모님,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JTBC ‘나쁜 엄마’의 독한 엄마 진영순, 배우 라미란에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정직한 후보’(2020)의 강원도지사에 이르기까지.

최근 10년간 가장 다채로운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 가도를 달렸지만 여전히 라미란은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연기 욕심이 계속 생겨요. 하지만 다작 때문에 대중이 지겨워하지 않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치처럼 매일 먹어도 또 먹을 수 있는, 항상 옆에 있는 것처럼 익숙하지만 나쁜 익숙함이 아닌 편안함을 주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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