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기자] 대학교 1학년이던 1996년, 압구정동에서 찍힌 사진이 패션잡지에 실리며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은지 어언 27년, 배우 엄지원은 늘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단 한 번도 일을 쉰 적은 없지만 냉혹한 연예계의 생리상 언젠가 자신이 캐스팅되지 않으면 더 이상 카메라 앞에 설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엄지원은 현재에 집중하며 주어진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기에 임한다고 했다.

엄지원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잔혹한 인턴’에서 식품 회사 마켓하우스의 실세 실장 최지원으로 분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최지원은 엄지원의 장기를 십분 살릴 수 있는 캐릭터다. 세련되고 우아한 직장여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엄지원만큼 적합한 배우를 또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독신인 최지원은 자신의 입사동기인 ‘경단녀’ 출신 인턴 고해라(라미란 분)를 이용해 출산·육아 휴직을 앞둔 여직원들이 퇴사하도록 종용한다.

“최지원을 현실적인 캐릭터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저는 프리랜서다 보니 조직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 회사의 실장, 부장이란 직함의 개념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어요. 회사생활을 하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최대한 사실적으로 연기하려 노력했죠.”

극중 최지원은 “어떻게 같은 여자로서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직을 대변한다. 아직 ‘경력중단’ 경험이 없는 엄지원은 “일은 자아실현과 생존을 위한 도구”라고 정의하면서도 “일이 끊어진다는 건 현대인들에게 굉장히 두려운 순간일 것 같다”고 공감했다.

입사동기 고해라 역의 라미란과는 영화 ‘소원(2013)’ 이후 10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라미란은 베테랑 배우라 함께 연기하기 정말 좋은 배우입니다. ‘이렇게 해볼까?’라고 하면 ‘그러자’고 바로 합이 맞춰져서 수월하게 촬영했어요. 만약 해라 역할이 저에게 들어왔다면 생활밀착형 연기를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이 컸을 것 같아요.”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훌쩍 넘은 엄지원은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똥개’(2005)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갔다.

엄지원은 “누구나 힘들고 나약해지는 순간이 있지만 신앙의 힘, 가족의 힘, 무엇보다 연기에 대한 애정이 20년간의 연기생활을 버티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어떤 일에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려면 10년 이상 해보라고 하잖아요. 10년을 버티면 굳은살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20년간의 배우생활을 통해 근력이 생긴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정신이 약해지고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근력이 생긴 거죠.”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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