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거듭나며 빅리그 생활에 날개를 단 이강인(22·파리 생제르맹·PSG)이 소속팀은 물론 국가대표팀에서도 ‘꽃길’을 예고했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이 결장한 튀니지와 A매치 평가전에서 대활약을 펼치면서 차세대 기둥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한국 축구계는 지금 ‘이강인 홀릭’이다. 스페인 라 리가 마요르카에서 맹활약하다가 지난 여름 세계 최고 클럽 중 하나인 프랑스 명문 PSG에 입단하며 화제를 뿌린 그는 이달 초 끝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황선홍호(U-24 대표팀)’의 금메달을 견인했다. ‘골든커리어’를 쌓은 이강인은 만 22세 나이에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아 유럽 최고 무대에서 꾸준히 자기 재능을 펼칠 기반을 마련했다.

커다란 짐을 덜어낸 덕분인지 이강인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끝난 아프리카 강호 튀니지와 평가전에서도 A대표팀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한국은 ‘4골 화력쇼’를 펼치며 4-0 대승했는데, 이강인은 멀티골(2골)과 더불어 상대 자책골로 연결된 김민재의 헤더를 돕는 코너킥 등 3골에 관여했다.

지난 2019년 5월 조지아와 평가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이강인은 4년여 만이자 15경기 만에 A매치 데뷔골을 신고했다.

이강인의 활약은 공격포인트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사타구니 부상 여파를 안은 손흥민을 벤치에 앉혔다. 대신 그가 수행한 섀도 스트라이커 겸 공격 지역 프리롤을 이강인에게 맡겼다. 조규성이 최전방에 배치됐고 이강인은 황희찬, 이재성과 공격을 이끌었다.

두드러진 장면은 이강인이 중앙에서 자유롭게 뛰다가 이재성과 위치를 바꿔 오른쪽 윙어로 돌아선 것이다. 한국은 전반 초반부터 튀니지의 파이브백 그물망 수비에 고전했다. 그러나 이강인이 측면으로 돌아선 뒤 특유의 유연한 탈압박과 드리블, 중앙을 파고드는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기어코 후반 8분 그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튀니지 수비를 제치며 프리킥을 얻어냈고, 직접 키커로 나서 그림 같은 왼발 슛으로 상대 골문 오른쪽을 갈랐다. 후반 12분엔 문전 혼전 중 상대 수비와 경합하다가 넘어졌음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 왼발 터닝 슛으로 추가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이 없는 상황에서 답답한 흐름을 깬 ‘게임체인저’ 구실을 이강인이 해낸 것이다. 그는 경기 직후 “오늘 (경기 중) 포지션을 변경해서 경기력이 나았다. 스스로 요청해서 바꿨다. 내 요청을 들어준 감독과 (이)재성이 형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기 흐름, 상대 스타일을 읽고 최적의 위치와 방식을 찾은 것인데, 왜 그가 빅리거이고 특급 재능을 지녔는지 느끼는 대목이다.

후반 44분 이강인이 교체로 물러난 뒤 벤치에서 그를 꼭 끌어안은 손흥민은 “이젠 나 없어도 되지 않겠느냐”며 후배 활약에 덩달아 신이 났다.

이강인은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손에 넣은 뒤 지난 8일 선수단과 귀국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다음날 A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럼에도 ‘금메달의 기운’은 피로를 잊게 하나보다. 튀니지전을 통해 최근 부상 여파까지 완벽하게 지우고 더 높이 날 디딤돌을 놓았다.

루이스 엔리케 PSG 감독은 올 시즌 이강인을 정규리그 초반 선발로 내세우며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부상과 대표팀 차출로 빠졌지만 그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고 대표팀에서도 가치를 뽐내면서 활용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클린스만호’에서도 마찬가지. 튀니지전을 찾은 5만9000여 관중은 킥오프 전 전광판에 클린스만 감독이 소개되자 “우~”하며 야유를 쏟아냈다. 대표팀 수장에게 이런 반응은 이례적인데, 최근 잦은 외유와 근태 논란으로 악화한 여론이 반영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강인이 클린스만호의 안방 첫 승이자, 2연승을 이끌었으니 수장은 기쁨이 더욱더 컸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달 웨일스와 원정(0-0 무) 경기 직후 상대 파이브백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 “이강인처럼 창의적인 선수가 필요하다”며 당시 부상으로 빠진 그의 공백을 아쉬워했다. 실제 이강인은 이날 비슷한 전략으로 나선 튀니지를 상대로 해결사 노릇을 했다.

그런데 ‘골든보이’는 돋보였지만 그만큼 클린스만 감독의 전략 부재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커졌다. 사실상 이강인의 개인 전술 아니면 상대 밀집 수비를 무너뜨릴 비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팀 내 이강인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1차 목표인 내년 1월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서는 밀집 수비를 타파할 부분 전술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

17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95위 베트남전은 또다른 시험대다. 두 수 아래로 꼽히는 베트남 역시 수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이는데, 클린스만 감독이 어떠한 해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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