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현진기자]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보니 여행 관련 책자도 무수하게 쏟아진다.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굳이 책장을 펼치지 않더라도 방 한 켠에 앉아 동영상으로 온 세계를 여행할 수도 있다.

여행 콘텐츠의 홍수 속에 누군가 또 하나의 여행기를 내놓는다는 것이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일까 치부할 수도 있지만 결국 여행은 스토리다. 저마다의 사연이 여행지에 닿아 수천, 수만 개의 스토리로 승화한다. 여행 전문가가 써내려간, 여행 정보가 가득 담긴 여행기보다 그런 이야기가 담긴 투박한 책자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다.

신태섭이 펴낸 ‘미·중 열차 여행 역사 얘기와 산티아고 순례길’이 딱 그렇다. 제목부터 세련된 전문가의 감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저자 신태섭은 육군사관학교 32기 출신으로 예편 이후 철강회사, 인천공항 경비본부 등에서 근무했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방송통신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미국 트로이대에서 교육학 석사, 항공대학교에서 항공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은퇴한 뒤에도 영어 관광가이드로 활동했고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 같은 그가 은퇴 이후 아내의 손을 잡고 떠난 수년에 걸친 여행길에서 겪은 체험과 단상을 담백하게 담아낸 것이다. 800㎞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해 미국과 중국 대륙을 철도로 누비며 보고 느낀 것들을 일기를 쓰듯 차곡차곡 정리했다. 여행기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벗어나 미국과 중국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역사 탐방으로 의미를 확장해간다. 도산 안창호와 안중근 의사의 족적을 따라가며 혼탁한 양극화의 시대에 경종을 울린다. 머나먼 이역 땅 곳곳에 깃들어 있는 선조들의 삶과 애환을 후진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진심이 곳곳에 묻어난다.

남편이 글을 써내려 가는 동안 주민센터에서 정보화 강사로 활동하던 아내는 사진을 모으고 표지를 디자인하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직접 편집했다. 오히려 책에 담긴 콘텐츠보다 부부가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여정이 더 정감있고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편집이 더 맛깔스럽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역사적 지식은 덤이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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