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약 10개월 만에 계약 방식이 바뀌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비FA 다년 계약을 발표했는데 FA 시장에 나왔고 FA 계약이 예정된 상태라고 한다. 구단과 선수, 그리고 KBO 규정상 문제는 없다. 다만 일련의 과정이 너무 생소하다. 발표만 하고 시행되지 않은 다년 계약이 됐다. 그러면서 FA 시장에 나온 LG 오지환 얘기다.
KBO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겨울 FA 승인 대상자 19명 명단을 공개했다. 지난 15일 FA 자격 선수 34명을 공시했고 17일까지 FA 자격을 충족한 34명으로부터 FA 신청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시장에 나오는 FA 19명이 확정됐다.
19명 중 18명은 예상한 이름이다. 최대어로 꼽히는 양석환부터 두 번째 FA 시장에 나오는 김선빈, 안치홍, 전준우 등의 이름이 올랐다. 중간 투수 빅3로 꼽히는 함덕주, 김재윤, 홍건희. 그리고 선발 최대어인 임찬규의 이름도 보였다.
그런데 명단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이름이 나왔다. 지난 1월 LG와 2024년부터 2029년까지 6년 최대 124억원(보장 100억원·인센티브 24억원) 비FA 다년 계약을 발표한 오지환이 FA 승인 명단에 포함됐다. 지난 1월 발표라면, 오지환은 이미 2024년부터 2029년까지 다년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
구자욱, 박종훈, 문승원, 한유섬, 박세웅, 김태군 등도 그렇다. FA 자격 대상자로 공시됐지만 이미 다년 계약을 맺음에 따라 FA를 신청하지 못한다. 당연히 FA 승인 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다년 계약을 발표한 선수 중 오지환만 FA 승인 선수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LG 차명석 단장은 “2차 드래프트를 생각했다. 2차 드래프트를 하기로 한 시점부터 오지환 측과 다년 계약 아닌 FA 계약으로 가기로 했다. 총액은 지난 겨울에 맺은 계약에 맞춰서 간다”며 “지난 1월 다년 계약을 발표할 때부터 다년 계약과 FA 계약 중 상황에 맞춰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FA는 2차 드래프트 35인 보호 선수 명단에서 자동으로 제외된다. 뎁스가 강한 LG 입장에서는 오지환이 FA가 되면서 선수 한 명을 더 묶을 수 있다.
행정상 문제는 없다. LG와 오지환이 발표한 다년 계약 발효 시점은 2024년부터다. KBO 박근찬 운영 팀장은 “FA 계약과 다년 계약 모두 합의한 계약서를 KBO에 제출하고 총재가 승인을 해야 계약의 효력이 발생한다. LG와 오지환 선수의 다년 계약이 발표는 됐지만 KBO에 계약서가 제출되지 않았다. 2024년부터 발효되는 계약이라 계약 마감일은 보류 선수 명단 제출일에 맞춰 2024년 1월 31일”이라고 밝혔다.
즉 지난 1월 발표된 계약은 알려지기만 했을 뿐 실행되지 않았다. 계약서가 KBO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오지환이 FA를 신청한 이상 계약이 실행될 수도 없다. 즉 오지환은 오는 19일부터 KBO리그 10구단은 물론 해외 구단과도 계약이 가능한 FA가 된다. 다년 계약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런데 LG와 오지환 양측의 약속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차 단장의 말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2023 정규시즌 중 2차 드래프트가 확정됐고 이에 따라 양측이 다년 계약을 폐기하고 FA 계약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다. 총액 124억원 계약 규모를 유지하는 만큼 오지환 입장에서는 다년 계약이든 FA 계약이든 큰 차이는 없다.
다만 LG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다. 샐러리캡 제도 아래에서는 FA 계약보다 다년 계약이 팀연봉 규모를 콘트롤하기 용이하다. SSG가 그랬다. 계약금이 없는 다년 계약을 꾸준히 진행했다. 박종훈, 문승원, 한유섬, 김광현이 일제히 다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팀 연봉 상황에 맞춰 연봉을 몰아서 받았다.
2022년 3월 SSG와 4년 151억원 계약을 맺은 김광현은 계약 첫 시즌인 2022시즌 연봉이 81억원으로 책정됐다. 2023시즌 연봉은 10억원. SSG는 남은 계약 기간 2년 동안 151억원에서 김광현에게 지급한 91억원을 뺀 총액 60억원을 지급하면 된다. 이처럼 다년 계약은 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연봉을 조절할 수 있다. 처음 약속한 전체 금액만 지급하기로 선수 측과 합의했다면 문제가 없다.
LG와 오지환은 다년계약이 아닌 FA 계약을 체결한다. 일반적으로는 FA 계약에 따른 계약금이 발생한다. 전체 계약금에 계약 기간을 나눈 금액이 팀 연봉에 포함된다. 만일 LG와 오지환이 6년 최대 124억원(계약금 40억원·연봉 10억원·인센티브 24억원)의 구조로 FA 계약을 맺었다면, 계약금 40억원에서 계약기간 6년을 나눈 6억6000억원 가량이 계속 팀 연봉에 포함된다. 당해 지급된 연봉과 인센티브도 당연히 들어간다.
FA 계약시 계약금이 필수는 아니다. 만일 오지환이 계약금 없이 FA 계약을 맺으면 LG는 SSG와 김광현의 다년 계약처럼 널뛰기 구조의 연봉 지급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일단 LG는 오지환과 계약금 없는 FA 계약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차 단장은 “FA 계약인 만큼 계약금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계약금 발생으로 큰 차이는 없다고 봤다. 그보다 2차 드래프트에서 한 명이라도 더 묶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타구단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계획을 세우고 구단을 운영한다. 작년 1월 LG와 오지환의 다년 계약이 발표되면서 올겨울 FA 영입 대상 후보군에서 국가대표 유격수가 삭제됐다. LG를 제외한 9구단은 올겨울 유격수 포지션 보강을 포기한 채 FA 영입을 포함한 전력 보강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오지환이 FA 시장에 있다. 게다가 LG와 최대 124억원이 보장된 상태다. 자유의 몸이라 모두가 오지환과 협상 테이블을 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구단이든 100억원이 넘는 거액을 갑자기 준비하기는 어렵다.
모두가 실행될 줄 알았던 다년 계약이 유명무실화됐고 그러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선수가 시장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선수를 향한 창구는 이미 닫힌 상태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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