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효원기자] K웹툰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는 현재 만화가 우리나라에서 태동해 자리잡기까지 어떤 고난을 거쳐왔는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1960년대 만화는 불량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하급 문화였다. 어른들은 만화를 보는 자식들에게 “공부 안 하고 시간 낭비한다”고 야단치기 일쑤였다. 만화가 하급 문화로 평가된 이유는 만화를 창작하는 작가가 거의 없이 출판사들이 일본만화를 들여 와 그대로 번역해 판매하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1937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난 1세대 만화가 박기정은 이런 일본만화 베끼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해 우리나라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주인공이다.

만화연구가 장상용은 우리나라 만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만화가 박기정의 삶과 만화세계를 조명했다. 책 ‘영원한 도전자 박기정’(늘봄)이다.

박기정은 1960년대 초중반 ‘가고파’, ‘은하수’, ‘들장미’, ‘흰 구름 검은 구름’, ‘도전자’, ‘폭탄아’ 등의 작품을 잇따라 창작해 독자들에게 우리 만화의 재미와 매력을 알렸다. 이후 그가 만들어낸 반항아 훈이 캐릭터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대표작 ‘도전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가수 최백호는 “‘도전자’를 보지 않았다면 나는 가수가 아니라 판검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만화 ‘도전자’는 내 인생의 책”이라고 밝혔다.

우리 만화 부흥에도 힘써 만화가협회를 결성해 불량만화 척결 운동을 벌였고, 상황을 상업적으로 이용만하고 있던 출판사에 저항해 ‘합동’(만화 전문출판사) 독점을 저지했다.

1978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중앙만평’을 그려 주목받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은 물론 이웃 나라 정상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자 양성에도 힘써 이우정, 김마정, 이두호, 최덕규, 박흥용 등을 키웠고, 박부성 이상무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9년 문광부 장관 공로상, 2004년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우수만화 복간사업인 한국만화걸작선을 통해 박기정의 ‘도전자’(2006), ‘폭탄아’(2016), ‘동창생’(2022) 등이 복간되기도 했다. 2022년 8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만화연구가 장상용은 만화가 박기정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세심하게 박기정의 삶과 예술에 대해 짚었다.

지은 책으로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 1960~1979’, ‘장상용의 만화와 시대정신 : 1980~1999’, ‘한국 대표만화가 18명의 감동적인 이야기’, ‘나는 펜이고 펜이 곧 나다’, ‘스토리텔링, 오리진과 변주들’, ‘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스토리텔링 쓰기’, ‘프로들의 상상력 노트’ 등이 있다. eggrol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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