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기자] 처음에는 계약 규모 1억1300만 달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이해가 된다. 팀에 필요했던 정교한 콘택트 히터이자 외야진의 중심을 잡아줄 중견수, 여기에 부족한 스피드까지 더해줄 적임자다. 지난 16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고 빅리거 생활의 시작점을 찍은 이정후(25) 얘기다.

첫 인사말부터 인상적이었다. 이정후는 자신의 별명인 ‘바람의 손자’를 언급했다. ‘바람의 아들’로 불린 아버지 앞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을 미국 미디어에 알렸다. 자연스럽게 취재진으로부터 별명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이정후는 “한글로 이 별명을 들으면 조금 오글거렸는데 영어(Grandson of the wind)로 들으니까 괜찮았다”고 웃으면서 “아버지는 정말 빠르셨다. 현역 시절로 비교하면 나보다 훨씬 빠르시다”고 말했다.

한국 야구팬이라면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 코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미국에는 생소한 인물이다. 현지 미디어는 이정후의 별명을 듣고 이미 이 코치의 발자취를 조명했다. 샌프란시스코 현지 언론 머큐리 뉴스는 “이종범은 1994년 MVP를 수상했다. 당시 KBO 역대 최다인 84도루도 기록했다”며 “이런 그를 두고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전했다.

이정후가 말한 것처럼 주력에서는 이 코치가 이정후보다 우위를 점한다. 이 코치는 한 해에 84도루를 올렸고 이정후는 7년 동안 KBO리그 통산 69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정후 또한 평균 이상의 주력을 자랑한다.

파르한 자이디 샌프란시스코 야구 부문 사장은 이정후가 빅리그 수준에서도 평균 이상의 주력을 갖췄으며 20-80점 평가 기준으로 60, 65점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빠른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이정후를 반겼다.

반가울 수밖에 없다. 2023시즌 샌프란시스코는 팀 도루 57개로 이 부문 최하위였다. 피치클락과 견제 제한, 베이스 크기 확장으로 도루 시대가 열렸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시대 흐름을 역행했다. 팀 도루 1위 신시내티의 190개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 30개 구단 중 21개 구단이 도루 100개 이상을 기록한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60개도 채우지 못했다. 내야수 타이로 에스트라다가 23도루. 에스트라다 외에는 두 자릿수 도루 달성자가 없다.

이정후의 임무는 이미 뚜렷하게 나왔다. 정교한 콘택트 히터로서 리드 오프를 맡고, 수비에서는 중견수로서 외야진 중앙을 지킨다. 출루 후에는 도루로 득점 찬스를 만든다. 키움 구단 성향상 적극적인 도루를 지양해왔으나 지금 빅리그는 다르다. 바뀐 규정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리그 평균 도루 성공률만 봐도 2022년 75.4%에서 2023년 80.2%로 5% 가량 높아졌다.

샌디에이고 김하성은 “규정이 바뀌면서 뛰는 선수들에게 많이 유리해졌다. 예전 메이저리그는 홈런 의존도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규정 변화로 인해 뛰는 선수들에게 또 하나의 생존 전력이 생겼다”면서 “나 또한 많이 뛰었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도루를 하고 싶다”고 2023시즌 38도루를 기록한 부분을 돌아봤다. 2022시즌에는 12도루였다.

지난 1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타율 3할과 20도루를 기록하는 선수는 매우 드물었다. 벌써 ‘코리안 이치로’로 불리는 이정후가 이를 해낸다면 1억 달러가 넘는 빅딜은 대성공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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