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본질은 감독의 무능함과 대한축구협회의 허술함에서 찾아야 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기간에 발생한 이강인과 손흥민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부 선참 선수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이강인의 명단 제외를 요청한 사실, 나아가 일부 선수가 이강인이 향후 대표팀에 선발될 경우 보이콧을 검토하겠다는 분위기까지 알려졌다. 심지어 근거 없이 ‘이강인이 열심히 뛰지 않았다’,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패스하지 않았다’라는 식의 묻지마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이강인은 1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언제나 대표팀을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께 실망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 앞장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하는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죄송스러울 뿐이다. 실망하셨을 많은 분께 사과드린다. 앞으로는 형들을 도와 보다 더 좋은 선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갈등을 부정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사과하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이강인이 정말 문제아라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일까.

세상에 갈등이나 싸움 없는 조직은 없다. 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26명의 젊은 선수가 모인 대표팀이라면 안에서 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위계 서열이 있긴 하지만 지금 대표팀 핵심 선수들은 대부분 나이 개념이 희박한 유럽에서 뛴다. 험난한 유럽에서 경쟁해 살아남은 선수들은 자존감이 높고 개성도 강하다. 단순히 나이로 복종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선배 말에 껌뻑 죽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당장 손흥민만 봐도 그렇다. 과거 토트넘 홋스퍼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손흥민은 베테랑 골키퍼 위로 요리스와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한판 붙었지만, 두 사람은 이후에도 좋은 동료로 지냈다. 원래 이런저런 일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는 게 팀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치기만 하는 팀은 세상에 없다.

때로는 선수단 내부에서 정리가 안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결국 감독을 비롯한 ‘어른’이 나서야 한다. 이강인과 함께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을 달성했던 정정용 감독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이강인은 간혹 과도하게 직설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아 일부 선배에게 크게 혼나기도 했다. 정 감독은 때로는 선수들이 문제를 해결하게 뒀고, 상황에 따라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강인이 팀에 녹아들도록 도왔다. 그렇게 이강인은 팀의 일원이 됐고, 대표팀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강인도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이번 대회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중재하는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대표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클린스만 감독은 거의 모든 일을 선수에게 맡긴다. 선수 간의 역학 관계를 생각해 트러블을 직접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라며 “뒤늦게 중재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타이밍이었다. 수수방관하다 급해지니 부랴부랴 움직였다. 결과가 좋았을 리가 없다”라고 밝혔다.

감독의 역할은 전술을 짜고 용병술을 발휘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선수단 내부 분위기를 파악해 교통정리를 하고 갈등이 일어나면 봉합하는 것도 감독의 임무다. ‘원팀’을 만드는 것을 보면 감독의 자질과 역량을 알 수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실제 경기 내용도 그렇다. 그렇다면 분위기라도 밝게 끌고 가는 리더십이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 내부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사령탑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도대체 리더십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협회의 대응도 문제다. 애초에 이 큰 사건이 국내도 아닌 해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 협회 내부에서 메시지 관리가 안 됐다는 의미다. 심지어 협회는 외신 보도 후 빠르게 싸움 소식을 인정하며 사건의 몸집을 키웠다. 같은 날 대표팀에서 내부자로 함께한 전북 현대 선수들이 말을 아낀 것과는 180도 다른 행보였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었다.

대표팀이라는 조직은 온전히 선수들에 의해 돌아가지 않는다. 선수와 함께 감독, 스태프, 협회 관계자까지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제 기능을 한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잘 수행했다면, 이번 사건이 이 정도로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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