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스코츠데일=윤세호 기자]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했다. 애지중지했고 어떻게든 올해 잠재력을 터뜨릴 계획이었다.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면서도 미래 팀의 핵심이 될 선수임은 부정하지 않았다. LG 염경엽 감독과 김범석(20) 얘기다.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확실한 수비 포지션이 없는 신인을 꾸준히 기용했다. 하위권 팀이 아닌 우승이 절대 목표인 1위 팀인데도 기회를 줬다. 지명타자 혹은 대타 밖에 할 수 없는 선수인데 6월 1군 경기에 선발 출장시켰다.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된 후에는 다음 시즌 구상을 시험하듯 1루 미트를 착용시켰다. 그리고 한국시리즈(KS) 엔트리에도 넣었다.

KS에서 김범석의 활약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수년 후 KS에서 주전 포수 김범석의 홈런으로 LG가 승리하는 모습을 미리 그렸다. 간접적이라도 KS를 경험하는 게 김범석과 LG 모두에 결국에는 득이 될 것으로 봤다. 즉 완전한 투자 개념으로 김범석의 KS 엔트리 진입을 결정했다.

한 명이 들어가면 한 명이 빠진다. KS 엔트리에 김범석이 승선하면서 이재원이 제외됐다. 타자로서 재능만 놓고 보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둘인데 더 어린 김범석이 KS 출전 기회를 얻었다. 이 기조는 이번 미국 애리조나 1군 스프링 캠프에서도 이어졌다. 6월 상무 입대 가능성이 높은 이재원 보다는 풀시즌을 뛸 수 있는 김범석에게 기회를 주는 게 낫다고 염 감독은 판단했다.

그래서 비시즌부터 준비시켰다. 트레이닝 파트에 김범석이 감량과 운동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짤 것을 주문했다. 가능하면 잠실구장을 오가며 훈련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김범석이 머물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시즌에 집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염 감독은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김범석의 단계적 감량을 계획했다. 감량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주기 위해 한 번에 무리해서 살을 빼는 것은 지양시켰다. 그런데 캠프 합류 시점에서 김범석의 몸무게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시즌 프로그램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캠프에서도 문제였다. 무리해서 훈련했다가는 부상을 당할 게 뻔했다. 그래서 김범석에게는 캠프 훈련 강도를 낮췄다. 염 감독은 “캠프 시작하는데 1㎏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캠프에서 다칠까 봐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도 못했다”며 “그런데도 옆구리를 다쳤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범석이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배들도 비시즌에 악착같이 감량하지 않았나. (김)현수는 7, 8㎏를 빼서 왔다. 범석이가 똑같은 몸무게로 캠프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범석이 당한 내복사근 부상과 관련해서는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꼭 한국에 돌려보내지는 않아도 됐다. 여기서 치료하고 재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책임감을 갖게 하려면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범석은 지난 16일 동료보다 보름 먼저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래도 미래를 응시했다. 염 감독은 “6월까지는 올리지 않을 것이다. 올리는 것도 얼마나 컨디션 관리를 잘했는지 보고 결정할 것”이라며 “감량이 필요한 이유는 포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석이는 1루수는 아니다. 포수다. 포수를 해야 범석이가 가치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범석이를 두고 세운 계획은 2026 아시안게임이다. 이제부터 차츰 감량하고 포수로도 조금씩 뛰어야 아시안게임 출전이 가능하다”고 말한 염 감독은 “포수 김범석, 1루수 이재원이 나란히 잠재력을 터뜨렸을 때 LG의 밝은 미래도 보장된다. 그때 내가 감독이 아니라 해도 다음 감독을 위해서 이재원과 김범석은 어느 정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재능은 모두가 인정한다. 주전 포수 박동원은 김범석에 대해 “스무살 선수가 이렇게 타격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며 “내가 스무살 때에는 치는 것은 범석이 근처도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동원은 포수 회식을 주선했는데 그날이 때마침 김범석이 한국 귀국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다. 눈물 속에서 고기를 먹였고 김범석에게 당분간 작별을 전한 박동원이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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