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51)가 지난 2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 서울시리즈’ 개막 1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스포츠서울은 박찬호가 시구에 앞서 기자회견에서 밝힌 소감을 1인칭 시점으로 모두 풀어쓴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 고척=황혜정 기자] 오늘 아침부터 일어나서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시구를 하나 던지려고 하는 계획이 한 경기를 다 던지려 하는 것처럼 굉장히 긴장되고 뭐랄까 의미를 갖게 됐는데, 너무나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고 30년 전에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사실 쉽지 않고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특히 마이너리그 있었을 때부터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헤쳐나가야 했었는데, 그런 일이 저에게는 굉장히 다 어려웠지만, 돌이켜보면 그 일들을 통해 제가 너무나 성장했고 그 성장 결실들이 한국 야구 발전과 또 30년 뒤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역사가 됐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명깊게 생각하고. 사실 이 글러브도 30년 전에 오프닝에서 썼던 글러브를 박물관에서 갖고 왔거든요. 오늘 의미있는 시구에 함께 같이. 공은 던지지만, 글러브를 사용하려고 갖고 왔습니다. 너무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30년 전에는 제가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이너리그로 내려왔고, 다음해인 1995년도에 (일본 선수)노모 히데오 선수가 와서 또다시 동양인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저조차도 노모 선수가 열어놓은 그 문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그러한 기회였거든요. 제가 마이너리그에서 다시 도전해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와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올라와서 노모 선수와 제가 같이 다저스 ‘팀 메이트’로서 활약하면서 동양의 메이저리그 문은 더 활짝 열렸고, 더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뒤로 이제 더 많은 선수들이, 다르빗슈(유)도 있고, (스즈키)이치로 선수도 있고, 또 우리 류현진 선수도 있고, 김하성 선수도 있고, 추신수 선수. 이렇게 더 많은 동양 선수들이, 또 대만에서도 오는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돌아갔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동양인 선수를 보면은, 노모 히데오의 나무가 정말 튼튼하게 자랐구나, 또 박찬호의 나무가 굉장히 튼튼하게 자랐구나. 그 나무들에서 열리는 그런 열매들이 정말 많은 메이저리거를 이끌어가는 기회가 되고, 앞으로도 더 동양의 야구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꿈꾸면서 더 크게, 훌륭하게 성장했으면, 그렇게 진출하고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다저스 팀은 제가 처음으로 저를 통해서 한국 야구 팬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첫사랑’. 한국 국민들에게 첫사랑이라는 그런. 특히 (1997년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요청사태)때 우리 한국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스포츠가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고, 또 용기도 줄 수 있었고. 그런데 그게 파란 유니폼이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그때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파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가 던지는 모습에 하루하루 기대를 하고, 응원을 하고, 또 승리했을 때는 같이 기뻐하고, 또 잘 안 됐을 때는 같이 힘들어 했던 그런 시간들을 뒤로 하고. 어떻게 보면 야구를 좋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이 됐던 그런 컬러인 다저스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추억이 됩니다. 지금의 50대, 60대, 70대 사람들은 굉장히 다저스를 가슴 깊이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거든요. 지금의 젊은 한국 야구팬들은 추신수 선수가 텍사스(레인저스)에서 활약을 했고, 또 류현진 선수가 다시 다저스에서 활약하고 토론토(블루제이스)로 갔고. 다양한 한국 선수들이 다양한 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팀이 한국 야구팬들에게 전달되는 모습이 아닌, 오히려 다양한 메이저리그 전체가 한국에 더 깊이 자리잡혀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 얼마전에 (용산 어린이공원에서)야구 캠프를 하면서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좋아하는 팀들을 이야기 할 때도 굉장히 다양한 팀들을 응원하더라구요. 그런 모습을 봤을 때, 아이들이, 또 한국에 있는 그런 야구 팬들은 메이저리그를 응원하는 다양한 그런 팀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저스는 첫사랑과 같다. 로스엔젤레스(LA)라는 도시는 저의 고향과도 같은 그런 곳이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경기가 어떤 팀이 이겨야 된다는 건 없습니다. 다만, 오늘(20일) 경기와 내일(21일) 경기가 한국에서 역사적인 경기가 펼쳐지는 만큼 기존에 있는 월드시리즈에서 최고의 경기를 보여준 것처럼, 이 개막전이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메이저리그 경기의 승부로 그런 좋은, 멋진 경기로 치러졌으면 좋겠어요.

‘기록’이라는 것은요,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2007년도에 다시 마이너리그 시즌을 보냈어야 됐는데 그때 ‘내 커리어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노모 선수를 다시 보면서 다시 한번 용기를 갖고 한번 더 도전해보자 하는 그런 마음으로. 노모 선수의 기록이 오히려 저를 다시 한번 재기하는데 큰 목표가 됐고, 용기를 줬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갖고 있는 124승이라는 기록도 언젠가는 당연히 깨져야죠. 깨져야 발전에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거고. 다르빗슈 선수가 꼭 깨길 바라고, 또 어떤 동양인 선수가 할텐데 그 깨지는 기록이 또다른 다음 세대들한테 또다른 좋은 목표와 좋은, 도전할 수 있는 탑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국에서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쓰던 물건, 특히 제가 쓸 수 있는 물건들은 유니폼이나 글러브, 도구까지 모든 것을 선배들이 쓰던 거를 물려받아야지 우리가 쓸 수 있는 그런 형태였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쓰던 물건을 또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우리는 졸업하고,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뭔가 내가 쓰던 물건을 가치있게 소장하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랬는데, 미국에 처음 갔는데 첫 스트라이크 아웃을 잡고 나서 사실 그 경기에 데뷔전에 2점을 허용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많이 부끄럽고 떨리는 마음으로 던졌기 때문에 많이 아쉬운 그런 모습이었는데, 이닝을 마치고 마운드에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는데, (당시 LA 다저스 감독이었던 토미)라소다 감독이 더그아웃 앞에까지 나와서 저를 허그(포옹)도 해주고, 볼 하나 주는 거에요. 그때는 통역이 야구장 안에 들어올 수 없는 상태라 제가 통역이 없는 상태에서 항상 야구장 안에서 뭔가를 해야되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고, 알아 듣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볼을 주길래 받아서 클럽하우스 들어가서 아까 점수 줬던 2점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은 마음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 볼에 대해서 라소다 감독이 다시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이 공이 ‘역사에 남는 공’이 될거라. 왜 그러냐면, 첫 한국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만든 공이라고. 그러면서 저한테 그걸 이해시켜주고, 그 공이 저에겐 소중한 보물이 된거에요. 그다음부터 모든 쓰던 물건들을 소장하는. 특히 제가 던지고 나서, 특히 승리투수가 되고 나서는 마지막에 던진 공을 제가 모으는 그런 습관이 생겼거든요. 때로는 마무리투수가 자기 세이브공을 팀의 승리 공이기 때문에 자기도 갖고 싶고, 저도 갖고 싶기 때문에 딜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공을 갖고 싶어서 제가. 그 공을 124개를 다 모았거든요. 그게 지금 저의 고향(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시에서 만들어 놓은 (박찬호)박물관에 기증이 되어 있는데, 뭔가 모을 수 있는 습관, 쓰면서도 굉장히 소중했고요, 다 쓰고 나서도 그걸 관리하는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노력도 많이 해야하는 것이 됐습니다.

이 글러브는 처음에 제가 데뷔해서 썼는데 당시 잘 모르고 제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서 타자가 제가 어떤 공을 던지는 지 알 것 같다고 해서. 제가 당시 미국에서 속구와 슬라이더 밖에 못 던졌는데, 이제 체인지업도 배우면서 여러가지 각종 구종들 배우면서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롤링스에서 이것을 새로 만들어줬어요. 보기에는 조금 흉해보이지만, 굉장히 가치있고. 30년 후에 오늘 다시 쓰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기쁩니다. 이걸 잘 간직하고 있었다는게.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이고(파드리스)와 계약을 할 때, 그전에 제가 김하성 선수한테 많은 이야기하고, 어떻게든지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리고 나서 김하성 선수가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하고 나니 굉장히 책임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삼촌이자 보호자 입장처럼 되게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는데, 첫해엔 (김하성이) 어려웠습니다. 그리 점점 그 어려움을 겪고 지난해에는 많은 성장 속에서 또 다른 역사를 한국선수로서 역사를 만들어 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게 됐고. 그러면서 김하성 선수의 그런 성장과정이 야구를 잘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그러한 성숙과, 내면의 인성조차 단단해지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흐뭇하고요. 그리고 이번 이러한 메이저리그 경기가 한국에서 열리면서 김하성 선수가 스포츠 스타로서 그런 한 부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모습. 얼마전에 샌디에이고 선수단이 다같이 회식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김하성 선수가 스피치(연설)도 하고, 선수들을 다같이 모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북돋을 수 있는 그런 멘트를 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흐뭇했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말도 못 했지만, 감히 흉내내지도 못했습니다. 팀 리더 역할을 하고, 선수들을 위해서 뭔가 멘트를 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의 선수들이, 특히 오타니(쇼헤이) 선수가 지난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국가대표)팀을 모아놓고 결승전 앞두고 이런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모든 야구선수들이 많은 걸 배웠는데. 이번에 김하성 선수의 그런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또다른 성숙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선배로서 정말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30년 전과 지금의 한국 야구를 비교한다면, 너무나 많은 발전을 했죠. 특히 제 생각에는 메이저리그의 문이 열리고 어린 아이들이 메이저리그 경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벌써 수준이 높아진거라 생각해요. 저는 서울도 아니고 작은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메이저리그라는 걸 상상도 못했어요. 볼 수도 없었고,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진도 볼 수 없었어요. 마이너리그가 뭔지, 메이저리그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1994년도에) 미국에 그냥 갔거든요. 가서 이제 경험을 하면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지금 선수들은 벌써 마이너리그가 뭔지, 메이저리그가 뭔지 그리고 박찬호 선수는 어떻게 했는지, 류현진 선수는 어떻게 했는지, 김하성 추신수 최지만 다 이런 선수들은 가서 어떻게 겪었는지. 다저스 뿐만 아니라 텍사스 등 모든 팀들을 어린 아이들이 그 팀들의 색과 유니폼을 눈에 익힌 상태에서 가기 때문에 도전하고 성공하는데 더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경기들이 자세하게 한국 야구 꿈나무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고요. 과거에는 박찬호 야구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서 더 다양한 야구 팬들이, 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시작하면서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갖고, 또 그 속에서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는 멋지고 훌륭한 선수가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t16@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