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홍경은 영화 ‘결백’(2020)에 출연했을 때부터 연기 잘한다는 평가를 받곤 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 연기임에도 인물이 가진 감정을 온전히 표현했다. 신인이었지만 선배 배우들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창작자들은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에 홍경을 캐스팅하곤 했다. 넷플릭스 ‘D.P.’(2021)의 극악무도한 선임, 웨이브 ‘약한영웅’(2022)에선 급격히 삐뚤어지는 오범석, SBS ‘악귀’(2023)에선 악귀를 쫓는 형사 이홍새로 다양한 감정을 표출했다.

27일 개봉한 영화 ‘댓글부대’에서는 홍경의 재능과 경험이 오롯이 빛난다. 극 중 홍경은 여론조작 조직 팀 알렙의 팹택을 맡았다. 현실에서는 힘 없고 나약한 존재지만, 온라인에선 커뮤니티의 여론을 주도하는 ‘대형 스피커’다.

홍경은 “저의 최애 작품 중 하나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다.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 팹택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20대를 지나며 이런 좋은 작품은 못 만날 것 같아 출연했다”고 말했다.

팀 알렙은 사실상 사회의 낙오자나 다름없는 친구 찡뻣킹(김성철 분), 찻탓캇(김동휘 분) 팹택이 활동명이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일을 하기 위해 온라인에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일을 한다. 단순히 거짓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주도면밀한 설계와 빌드업 후 사람들이 믿을 수밖에 없는 수법을 활용했다. 팀 알렙이 던진 거짓은 온라인 안에서 진실처럼 퍼졌다. 팀 알렙의 세 사람은 마치 한 명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감독님께 A4용지 두 장 정도로 제가 생각하는 팀 알렙을 정리해서 보냈어요. 우리 셋은 치열하게 싸우면서 부딪힘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개인적으론 팹택이 두 친구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느꼈어요. 팹택은 사회구조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잖아요. 어떻게든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발버둥 치는데, 특히 옆에 두 친구한테 먼저 인정받고 싶다고 느꼈어요. 영화 보니까 세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더라고요.”

홍경은 독특하게 호흡한다. 감정 없이 지나가는 대사라도 상투적이지 않게 내뱉는다. 주변 공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다소 튈 수 있는 그 언행이 작품 내에 적절히 녹아들어 긴장을 유발한다.

“정말 치열하게 준비하긴 해요. 인물에 대한 동력을 찾아요. 이 친구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려고 노력하죠. 어떤 대사를 하고 말을 할 때, 환경이나 감정을 최대한 찾죠. 호흡법을 계산해 본 적은 없어요. 그런 호흡이 느껴졌다면 그 인물이 그 호흡으로 대사를 하는 게 맞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대세 배우로 떠오른 손석구는 젊은 배우들에게 귀감이 된다. 나른하면서도 관능적인 이미지, 거기에 감정이 잔뜩 녹아있는 대사와 행동은 남자 배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홍경 역시 손석구에게 적지 않게 배웠다.

“저는 영화를 이미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보편타당하게 아름다운 이미지 안에서 내러티브와 리듬감이 있어야 해요. 제작진이 만든 미학적인 공간에서 배우들은 잔물결을 타고 가는데, 주인공이었던 석구 형은 선장 역할을 정말 잘해준 것 같아요. 전체를 설계하고 힘의 균형을 적절히 나누면서 끝에 힘을 주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저도 언젠가 주연배우가 돼 극을 이끄는 날이 오길 바라고 있어요.”

팀 알렙은 멀쩡한 영화에 가짜뉴스를 악의적으로 퍼뜨려 흥행을 망치기도 하고, 특정 여성을 집중 공략해 마녀사냥을 받게 만든다. 영화에서 그 여성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연예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악성댓글에 노출된 배우로서 ‘댓글부대’는 꼭 남 일은 아니다.

“통합적인 답변이 될 텐데, 정보가 많은 시대잖아요. 정보의 다양화에 따라 여러 의견과 주장이 나오는 건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살아오면서 보고 읽고 접했던 것의 저만의 견해가 분별력이잖아요. 저로서는 분별력을 갖추고 건강하게 섭취하려고 해요. 댓글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비판과 비난으로 나눠서, 비판은 최대한 수용하려고 해요.”

어느덧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한 홍경은 새롭게 맞이할 30대에는 주위와 함께 잘 사는 법을 고민 중이다.

“20대 때 혈안이 된 건 ‘부끄럽지 않게 20대를 남기자’는 생각이었어요. 맹목적인 느낌과 감정이 있어요. 그래서 게걸스럽게 작품을 섭렵했어요. 어떻게든 제가 가진 능력을 키우려고 집중했죠. 요즘 드는 생각은 영화 외적으로 지인들의 생각을 알려고 해요. 나만 잘 산다고 행복한 건 아니더라고요. 모두가 즐거워야 저의 삶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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