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 기자] 유령처럼 떠돌던 ‘음원 사재기’의 실체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를까.
음원 스트리밍 수를 조작해 순위를 인위적으로 올리는 이른바 음원 사재기를 한 연예기획사·홍보대행사 관련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5개 음원을 172만 7985회 재생해 순위를 조작한 홍보대행사·연예기획사 4곳의 대표와 관계자 등 11명을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기소 대상에는 가수 영탁의 전 소속사인 밀라그로 이재규 대표도 포함됐다. 이 대표는 2019년 영탁의 발매곡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의 음원 차트 순위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 업자에게 음원 사재기를 의뢰한 혐의를 받는다.
이외에도 음원 사재기 대상이 된 노래 중엔 그룹 네이처의 ‘웁시’, 가수 KCM의 ‘사랑과 우정 사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음원 사재기 아닌 바이럴 마케팅? ‘편법 잡아내기’가 관건
‘음원사재기’ 논란은 SNS사용이 본격화된 2010년대부터 대중음악계 이슈로 부상했다. 지난 201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사재기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검찰 조사가 진행됐고 2018년 사재기 논란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수 박경의 폭로로 닐로, 바이브 등이 갑작스럽게 음원 순위가 급상승한 몇몇 가수들이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식 조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명확한 증거와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음원 플랫폼들도 자정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멜론을 비롯해 벅스, 지니뮤직, 플로, 애플뮤직, 유튜브뮤직 등 국내외 주요 음원 플랫폼들은 지난해 10월경부터 볼륨을 끄고 음악을 재생하는 ‘음소거 스트리밍’을 차트 집계에서 제외했다. 음원 사재기의 경우 차트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십, 수백대의 기계로 동시에 음악을 재생하기 때문에 음소거 상태로 음원을 재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0여년에 걸친 의혹과 노력에도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선 금전 등 대가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음원 사재기 의뢰 내용이 담긴 녹취파일을 확보하거나 돈 거래 정황이 밝혀지더라도 음원 사재기와 바이럴 마케팅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사재기 혐의로 처벌하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획사가 브로커에게 음원 사재기의 대가를 지불한 내역을 토대로 수사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정황을 확보한다고 해도 이 돈이 사재기를 위해 쓰였는지, 아니면 일반적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사용된 것인지 확실한 증거를 잡기가 어렵다”며 “관계자 진술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도 혐의 입증에 어려운 지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바이럴 마케팅은 각종 SNS에 아티스트 관련 콘텐츠나 추천 영상을 올려 리스너들이 선택하면 음원 순위가 올라가는 홍보 방식이다.
차트를 교란하는 음원 사재기는 불법이지만, 바이럴 마케팅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가요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안 하는 기획사가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방식이다. 음원 제작 단계부터 바이럴 마케팅을 위한 비용을 산정한다. 최소 1억, 많게는 수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럴 마케팅 업체들이 음원 사재기를 주도하는 등 편법 사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과연 순수한 마케팅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의심은 꾸준히 나왔다. SNS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실제 음원차트 순위로 이어지는 게 가능한지와 이 과정에서 편법이나 불법적인 음원 사재기로 동원되진 않았는지 의구심도 든다”며 “만약 바이럴 마케팅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한다면 사실상 걸리지 않을 회사가 없기 때문에 이번 재판을 가요계 종사자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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