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천우희와 이열음이 악의 정점에 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에서다. 천우희는 자신의 재미를 위해 가학을 일삼는 8층을, 이열음은 생존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을 전하고 화를 키우는 4층을 연기했다. 아무리 매력이 있어도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조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천우희와 이열음은 빼어난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화를 돋웠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가능한 도전이었다.

◇천우희 “저보고 한국의 엠마스톤이래요”

영화 ‘써니’(2011)에서 면도날을 우적우적 씹어먹던 상미 이후 가장 인상적인 연기다. ‘써니’의 상미가 아직 인성이 확립되지 않은 여고생이었다면 ‘더 에이트쇼’의 8층은 악의 정점이다.

‘써니’ 이후 13년, 애써 상미 이미지를 지우고 사랑스러운 ‘천블리’로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했던 천우희에게 8층 연기는 과거의 회귀가 아닌 도전이었다. 주어진 권력을 막무가내로 사용하고, 자신의 재미를 위해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죄책감도 없는 인물,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8층을 표현하기 위해 천우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8층은 연민이나 동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아요. 일반적인 정서가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게 접근하려 했어요. 1차원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인물을 그리려 했죠.”

극중 노출도 적지 않다. 1분마다 34만원이 쌓이는 8층은 끊임없이 옷을 샀다. 살결이 훤히 드러나는 노출도 마다 않는다. 천우희는 데뷔 후 처음으로 퇴폐적인 매력을 그려냈다. ‘한국의 엠마스톤’이란 칭찬도 나왔다.

“가끔 엠마 스톤을 닮았다는 소리를 듣긴 해요. 그분도 개구리 상인가 봐요. 하하. 최근에 영화 ‘가여운 것들’을 봤거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이 됐어요. 이번엔 저도 머리 풀고 제대로 놀아볼 수 있었어요. 작품의 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직관과 본능에 따라 움직였죠.”

최근 천우희는 자신감이 붙었다. 공식 석상에서 표현도 과감해졌고, 주저하던 예능 출연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조심스러웠던 과거 모습이 사라지고, 얼굴엔 여유가 느껴진다.

“‘더 에이트 쇼’랑 tvN ‘이로운 사기’ 촬영을 거의 동시에 했어요. 심리적 부담이 컸어요. 그 산을 넘고 나니까, 오히려 제가 단단해지더라고요. 저를 인정하게 됐고요. 저를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 게 그땐 것 같아요.”

◇이열음 “야망과 욕심이 없었던 나, 스스로 채찍질”

‘더 에이트 쇼’엔 연기력으로 무장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박해준, 문정희, 배성우는 선수들이 인정하는 선수다. 가능성이 돋보였던 신예 이열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했다.

“책임감이 엄청나게 컸어요. 저를 믿어주신 거잖아요. 시간이 날 때마다 감독님을 붙잡고 물어봤어요. 현장에서 눈도 잘 안 마주치고 귀찮아하시기도 했어요. 하하. 불안이 심해서, 명언을 읽었어요. 늘 단톡방에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남겼어요.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죠. ‘힘들고 외로워도 그냥 해라’라는 명언이 떠오르네요.”

한재림 감독은 “이열음은 진짜 OK가 날 때까지, OK를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열음의 간절함이 전해지면서도, 현장에서 쉽게 OK를 하지 않는 연출가로 유명한 한 감독에게 굳이 그 주문이 필요했을까 싶은 의문이 든다.

“감독님의 시원한 OK가 있어요. 찜찜한 OK도 있고요. 저는 진짜 OK를 원했어요. 제가 200%를 해봐야 감독님의 70%밖에 안 된다는 각오로 임했어요. 정말 배우는 게 많은 현장이었어요. 그리고 막내여서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 고등학생들처럼 낙엽만 지나가도 웃는 현장이었거든요. 모든 분에게 감사해요.”

JTBC ‘더 이상은 못 참아’(2013)로 데뷔한 이열음은 tvN ‘고교처세왕’(2014), SBS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2015) 등을 통해 차근차근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연기력에 비해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더 에이트쇼’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는 역대급 민폐 캐릭터를 얄밉게 소화했다. 그의 연기를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정말 짜증난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민폐 4층’이 통한 셈이다.

“제가 욕심과 야망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어릴 때부터 시작했다 보니까 그냥 어리광 부리면서 일을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할 것 같은 캐릭터만 했어요. 도전이 없었죠. 이 일을 정말 오랫동안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를 막다른 길로 던졌어요. 경쟁이 꼭 필요한 곳으로요. 그러니까 스스로 더 성장한 것 같아요. ”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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