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국내 유일의 내셔널타이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이 열린 충북 음성의 레인보우힐스 컨트리클럽. 대회 1, 2라운드가 열린 지난 14, 15일은 수은주는 분명 섭씨 31도 내외였지만, 체감기온은 40도에 육박할 만큼 후텁지근했다.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정도였으니 직접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고역이었을 터. 선수들이야 프로이니만큼 뙤약볕에도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는 게 당연한데, 1번부터 18번홀까지 발걸음조차 조용히 숨죽이며 따라다니는 갤러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서’ 고역을 감내할까 싶었다.
2022년 한국여자오픈에서 이른바 ‘오구플레이’라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 윤이나(21·하이트진로)는 팬 청원 덕분에 징계를 감면받았고, 시즌 개막 2개월여 만에 이번대회에 다시 출전했다. 모두의 시선이 윤이나의 15번홀(파4)에 집중됐는데, 호쾌한 티샷에 이어 안정적인 플레이로 파를 기록했다. 윤이나는 “티샷을 잘치고 나니 ‘한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로 그간 마음고생을 대신했다.
어린 선수가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고 ‘돌아온 한국여자오픈’ 첫 라운드를 무난하게 마치자,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갤러리 사이에서 커다란 박수가 터져나왔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통해 “좋은 기억이 아니어서 라운드하면서도 간간히 생각났다. 이때마다 ‘지금 해야 하는 샷, 눈앞에 있는 공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밝힌 그는 곧바로 기다리던 팬클럽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오기까지 팬 응원이 큰 힘이 됐다”는 게 윤이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경기 후 미디어센터든 믹스트존에서든 취재진을 만난 KLPGA투어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곳으로 달려간다. 자신을 응원하는 팬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가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하는 등 고마움을 표한다. 팬덤을 보유한 선수도 소수의 팬이 찾는 선수도 있지만 프로 선수들인만큼 팬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아서다. “팬 응원 덕분에 힘들어도, 컨디션이 안좋아도, 아파도 최선을 다한다”고 말하는 선수가 정말 많다.
한국여자오픈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든 임희정(24·두산건설)도 마찬가지다.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는데도 연습그린 주변에서 “고생하셨다”고 말을 건네는 팬에게 미소로 화답하는 등 팬 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김민솔(18) 유효주(28·이상 두산건설) 등도 팬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대한다. 팬과 선수가 교감하는 장면은 KLPGA투어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재미있는 점은 지난해와 다른 장면이 더러 보인다. 종이나 공, 모자, 우산 등에 사인받는 게 익숙한 풍경인데, 올해는 시즌 개막전이던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때부터 화보집을 들고 선수를 찾아다니는 팬을 자주 목격한다. 두산건설이 새롭고 성숙한 팬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제작한 포토북이 예상보다 크게 호응받고 있어서다.
두산건설이 제작한 화보집은 이른바 ‘사인북’으로 통한다. 두산건설 여자골프단 소속 선수뿐만 아니라 KLPGA투어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들의 사진으로 구성했다. 각 페이지는 사진 옆에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표수집하듯, 사진속 주인공의 사인을 모으는 게 새로운 팬덤 문화로 자리잡는 인상이다. 팬층이 두꺼운 선수는 와닿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는 이렇게라도 찾아주는 팬이 있어 행복하다.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도 된다.
팬입장에서도 이른바 ‘세컨드 픽’ ‘서드 픽’을 만들 수 있고, 응원하는 선수가 아닌 또다른 선수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낀다. 여러 대회를 방문해 많은 선수에게 사인받으면, 2025시즌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 프로암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두산건설은 가장 많은 사인을 받은 응모자를 추첨해 두 명에게 프로암 출전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에서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KLPGA투어 모든 대회를 축제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약속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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