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와 스노보드는 스피드를 즐기는 레저라 여길 수 있지만, 근본적으론 브레이킹 스킬을 다루는 스포츠에 가깝다. 가속보다 감속이 기술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차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편리한 수단이지만,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매우 크다. 차량 자체가 감당하지 못할 무서운 살상 무기다.
지난 1일,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람 한명은 우주와 같다는데, 9명이 한순간 소멸했다. 가족에겐 온 우주와 같던 이들이 한마디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차량이 원흉이다.
사고 차량은 2일 오전, 경찰에 의해 국과수로 견인됐다. 국과수는 해당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에 들어갔고, 결과까지 통상 1∼2개월이 소요될 예정이다.
참사 이후, 급발진 급가속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14년간 791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접수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급발진 인정 사례는 한 건도 없다.
현행법상 급발진이 자동차 결함으로 의심되는 경우, 이를 입증하는 건 운전자 몫이다. 증명책임에 대한 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몇 차례 발의됐지만, 결국 처리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0.1%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급발진과 같은 돌발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상황을 가정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다.
갑자기 차가 굉음을 내며 돌진한다. 우선 페달을 밟고 있다면 즉시 발을 뗀다. 만에 하나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끝까지 강하게 밟는다. 재차 밟아도 감속이 안되면 기어를 중립으로 바꾼다. 엔진의 동력 전달을 끊기 위해서다. 이어 주차 브레이크도 조작한다.
하지만 실제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순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런저런 조치를 했는데도 차량이 멈추지 않는다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마지막 선택지는 충돌이다. 가능하면 주차된 차량을 찾아 들이받아야 한다. 가로수나 전봇대와 달리 차량은 서로 찌그러지며 완충 작용을 한다. 그나마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한 번에 끝내는 대처 방법이 있긴 하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긴 하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면 엔진 시동부터 끄는 방법이다. 다만 핸들이 잠기고 브레이크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기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운전미숙이 아닌 차량 결함이라면, 이를 입증하는 증거도 마련해야 한다. 차량의 전·후방 2채널 블랙박스로는 부족하기에 페달까지 3채널로 추가한다.
최근, 운전석 아래만 찍는 페달용 카메라를 추가 장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페달용 카메라(풋블랙박스)는 시중에 꽤 나와 있다. 1~2만원대 저렴한 제품도 많고 시가렛소켓이나 콘솔의 USB전원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가속의 시대로는 급속히 발전했지만, 감속 기술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자동차 제조사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및 페달용 블랙박스 설치를 의무화하기 전까진, 각자 알아서 대비해야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