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파일럿 한정우(조정석 분)는 성공한 사람이나 출연한다는 TV쇼의 주인공이 됐다. 뛰어난 조종 실력이 뒷받침된 덕에 항공사 대표 얼굴로 우뚝 섰다. 모두가 그를 반기고 좋아했다. “꽃다발 같은 승무원”이라고 내뱉은 말이 퍼지기 전까진 그랬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고, 모두 그를 피했다. 빚은 산더미인데 아내는 이혼을 꺼냈다. 벼랑 끝까지 몰린 한정우는 결국 동생 이름 한정미(한선화 분)를 빌려 새 항공사에 취직했다. 뷰티 유튜버인 동생의 노력으로 완벽한 여장에 성공했고, 여성 부기장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31일 개봉하는 영화 ‘파일럿’은 모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다. 특히 주연배우 조정석의 힘이 컸다. 그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로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냈다. 더할 나위 없는 조정석의 원맨쇼다.
한정우는 천생 조정사다. 뛰어난 조정능력은 물론, 사회생활도 만랩이다. 빠른 승진을 위해 윗사람들의 비위도 잘 맞추고 후배들과도 격의없이 지낸다.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젠더 감수성이 전무한 오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꽃다발 같은 승무원”이라고 발언한 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악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성희롱 발언을 한 승무원이 됐다. 하루아침에 직장과 가정,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었다. 여장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뮤지컬 ‘헤드윅’ 출연을 통해 여장이 어색하지 않은 조정석은 여장한 한정우를 더할나위없이 새침한 여성으로 묘사했다.
비밀이 많다보니 매사 조심스럽고 더 여성적이다. 그러다 남자 본연의 자태가 나오고 스스로 놀라 입을 가리는 등 각종 개인기를 선보인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어느새 수염이 올라온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조정석은 한정우일때는 철없는 장남이자 가장의 얼굴을 보이다, 한정미가 된 후 여러 고충을 경험하면서 점차 성숙해진다. 분명한 사건 없이도 서서히 성장하는 한정우의 얼굴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한선화와 이주명, 신승호는 조정석의 독무대에 정확하게 발을 맞춘다. 한선화는 주무기인 코미디 연기로 조정석과 함께 웃음을 이끌고, 한정미(조정석 분)의 동료 윤슬기 역을 맡은 이주명은 시대상을 담은 캐릭터 연기로 메시지를 담는다. 한정미를 흠모하는 서현석 역의 최승호 역시 적재적소 리액션으로 다채로운 웃음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조정석 못지않게 강력한 웃음을 터뜨리는 인물은 한정우와 한정미 모친 역할을 맡은 오민애다. 단순히 전화를 받는 모습으로도 큰 웃음을 만들 뿐 아니라, 시종일관 재밌는 장면을 그려낸다. 조정석 다음으로 웃음 지분이 많다.
단순히 웃음만 있는 건 아니다. 폭발적인 웃음 속 김한결 감독은 시대에 부합하는 젠더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어려운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아울러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도 되돌아보게 한다. 첨예한 갈등이 담긴 소재지만 불쾌한 지점은 피하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나온 여름 영화 중 ‘핸섬가이즈’와 더불어 웃음의 분량이 많은 작품이다. ‘핸섬가이즈’가 기를 모았다가 후반부에 터뜨리는 형태라면, ‘파일럿’은 첫 신부터 밀어붙인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코미디가 조정석의 개인기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다. 남녀노소 누구와 봐도 신나는 기분으로 극장에서 나올 수 있는 영화다. intellybeast@sportss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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