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부담은 없다. 만루에서 나가는 건 늘 해온 일이다.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커리어 대역전은 현재진행형이다. 만 38세였던 지난해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우승 공신이 됐다. 올해도 그렇다. 절체절명 위기에서 팀을 구원한다. 마술처럼 떨어지는 포크볼을 앞세워 전성기를 보내는 LG 김진성(39) 얘기다.

속구 아니면 포구볼. 사실상 두 가지 구종만 던진다. 오픈북 테스트나 마찬가지인데 타자 입장에서는 난이도 최상이다. 포크볼을 예측해도 떨어지는 정도가 시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헛스윙을 유도하는 포크볼뿐이 아닌, 스트라이크존 상단이나 하단에 걸치는 포크볼도 있다. 어떻게든 맞기를 바라며 배트를 돌릴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잠실 SSG전이 그랬다. 6회초 2사 만루에서 등판한 김진성은 KBO리그 최다 홈런 타자 최정을 맞이했다. 최정도 알고 자신도 알고 야구를 보는 모든 사람이 아는 ‘포크볼 승부’에 돌입했다. 초구 포크볼 스트라이크. 2구 포크볼 헛스윙. 볼카운트 우위를 점한 김진성은 스트라이크존 상단으로 떨어진 5구 포크볼로 최정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경기 후 김진성은 당시 상황을 두고 “부담은 없다. 만루에서 나가는 건 늘 해온 일이다.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정과 승부에 대해 “사실 다 포크볼 던지는 걸 알지 않나. 그래도 그냥 던진다. ‘나는 포크볼 던진다. 너는 쳐봐라’는 생각으로 던진다”며 “삼진을 잡은 공은 실투였다. 다행히 너무 높아서 삼진이 나왔다. 어설프게 높았다면 외야 관중석 상단에 꽂히는 만루포가 됐을 것”이라고 외줄타기 승부에 임하는 심정을 전했다.

늘 포크볼이 주무기였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NC에서 8년 동안 필승조로 활약할 때도 김진성의 트레이드 마크는 포크볼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김진성은 “솔직히 몰랐다. 2022년 LG에 오고 나서 NC 시절 나와 상대했던 동생들이 포크볼에 대해 얘기해줘서 알았다. LG에 오니까 (오)지환이와 (채)은성이가 ‘형 포크볼 정말 좋다. 진짜 못 치겠다. 더 많이 던져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포크볼에 대한 자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실제로 LG 이적 후 포크볼 비중이 늘었다. 기록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NC 마지막해인 2021년 38.9%였던 포크볼 구사율이 LG 첫해인 2022년에 45.1%로 올랐다. 2023년에는 46.1%. 2024년에는 52.0%다. 올해 속구보다 포크볼 비중이 높은 완벽한 ‘포크볼러’가 됐다.

프로 입단 21년차. 그런데 포크볼러로서는 3년차일지도 모른다. 포크볼만 꾸준히 유지하면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김진성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예전부터 속구 140㎞가 안 나올 때가 은퇴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140㎞ 이상은 충분히 나오니까 아직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길면 3년 정도 더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20일 경기에서 김진성은 속구 최고 구속 시속 145㎞를 찍었다.

자의든 타의든 순탄함과는 거리가 먼 야구 인생이다. 올시즌도 그랬다. 지난달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교체 거부 의사를 드러낸 게 사건 아닌 사건이 됐다. 팀 규정에 따라 김진성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후 김진성은 염경엽 감독, 이호준 수석 코치, 최상덕 투수 코치에게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동료들에게도 사과를 전했다.

김진성은 “전적으로 내가 잘못한 일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 던져야 한다. 동료와 팬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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