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현진기자]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지작 거리던 정부가 결국 납부자의 의무를 더 늘리겠다는 해법을 내놨다.
정부 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의무가입기간은 59세에서 64세로 늘어난다.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한 상황 등을 고려해 보험료 납부 기간을 5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연령이 65세까지 계속 늦춰지고 있기 때문에 의무가입연령을 상향해 보험료 납부 종료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고령자들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내몰린 현실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다수 고령자는 늘어난 가입기간에 보험료를 납부할 수 없다. 의무가입기간 연장은 ‘정년연장’ 등 노동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 의무가입연령 ‘59→64세’ 검토…“고령자 경제활동 증가 고려”
보건복지부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연금개혁 추진계획 브리핑’에서 국민연금 의무가입 연령을 59세에서 64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대수명 상승으로 고령자의 경제활동이 증가한 상황 등을 고려해 국민연금 가입 상향 연령을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18세∼59세 국민은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으로 60세가 되기 전까지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다만 27세 미만 중 소득이 없는 사람은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민연금에 최소 10년 이상 가입한 국민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때부터 ‘노령연금’을 받게 된다.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원래 법적 정년과 같은 60세였다. 그러나 수급 개시 연령이 1998년 1차 연금 개혁 때 재정안정 차원에서 2013년부터 61세로 높아졌고 이후 5년마다 한 살씩 늦춰져 2033년부터는 65세에 연금을 받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 때문에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출생 연도에 따라 달라진다. 1952년 이전 출생자는 60세, 1953∼1956년생 61세, 1957∼1960년생 62세, 1961∼1964년생 63세, 1965∼1968년생 64세, 1969년생 이후 6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추가적인 수급개시 연령 인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사실 (의무가입연령) 64세는 수급개시 연령인 65세와의 간극을 조금 줄이기 위한 조치”라면서 “이미 상향 조치가 결정된 수급 개시 연령은 이번 개혁안에 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도 의무가입연령과 상관 없이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보험료를 64세까지 낼 수는 있다. 다만 60세 이상에게는 가입 의무가 없으므로 고령자를 고용하는 사업주에게 보험료 절반을 지원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취업을 한 고령자더라도 보험료는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64세까지 가입이 의무화된다면 고령 피고용자가 64세까지는 ‘직장가입자’가 되고 사업주는 보험료 절반을 낼 의무를 갖게 된다.
◇ 65세까지 늦춰지는 수급개시연령에 알맞은 정책
전문가들은 의무가입 연령을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다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앞으로 수급개시 연령이 65세까지 연장되니까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연장하면 60세부터 64세까지 보험료를 최대 5년간 더 낼 수 있게 된다”며 정책 방향에 동의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60∼64세 고용률 증가와 함께 이뤄진다면 여러모로 국민연금 제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동계는 의무가입 연령 상향으로 60세 이상 노동자의 보험료 납부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환영했다. 지금까지는 60세 이후에 보험료를 내려면 ‘임의계속가입’으로 본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하는데 의무가입 연령이 상향되면 ‘사업장 가입자’는 회사화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김태훈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60세 이상은 임의계속가입을 통해 보험료를 내야 해서 사업장 가입자도 본인이 보험료를 다 내야 한다”며 “60세 이상은 저소득 노동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의무가입 연령이 올라가면 사업장 가입자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의무가입기간 연장만으론 부족…정년연장 등으로 ‘보험료 납부 여력’ 키워야
다만 전문가들은 의무가입기간을 5년 연장하는 것만으로는 연금 수급자들의 노후를 개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의무가입기간을 64세로 연장하려면 고령 노동자들이 해당 연령까지 안정적인 소득 활동을 통해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의무가입 연령과 수급개시 시점을 맞추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렇게 하려면 노동자들이 의무가입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년연장’ 등의 논의를 통해 60세 이후에도 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다미 부연구위원은 “현재 정년이 60세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정년까지 일하기보다는 대부분 그 전에 퇴직하고 자영업을 하거나 실직 상태에 놓여 벌이가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의무가입연령을 5년 연장해도 실질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안정적으로 소득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의 제도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더 오래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집단은 보험료를 계속 내면서 나중에 더 높은 급여를 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보험료를 5년 추가로 더 납부할 기회를 얻지 못해 노후소득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의무가입기간 상향이 고령자 고용률을 떨어뜨리는 기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도적인 정년 연장’ 없이 느슨하게 계속고용을 독려하는 방식이라면 보험료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고령자 고용을 꺼리게 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주은선 교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라 60∼64세 고용률이 올라가고 있는데 (의무가입기간 상향 조치가) 올라가고 있는 고용률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무가입기간 상향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분명히 있을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며 “고용의 질을 높이는 등의 정책, 전략이 함께 작동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i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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