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파리=김동영 기자] 7년 전만 해도 그는 영화 촬영 현장에 있었다. 배우들의 얼굴을 컷에 맞게 분장하면서 영화가 완성돼 가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그는 패럴림픽 무대에 섰다. 손에는 미용 붓이 아닌 칼이 들려 있었다. 휠체어 검객 조은혜(39·부루벨코리아) 얘기다.
조은혜는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펜싱 여자 플뢰레 동메달결정전(장애등급 B)에서 베아트리체 비오(27·이탈리아)에게 2-15로 완패했다.
조은혜는 이날 16강에서 홍콩의 충웬핑에 10-15로 패해 위기를 맞았지만, 패자부활전을 통해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동메달 결정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상대가 한 수 위였다. 패배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불사조, 비상하다’(2020년)에도 출연했던 비오는 11살 때 수막염이 걸려서 두 팔과 두 다리를 자른 선수다. 그러나 5살 때부터 펜싱을 해서 기본기는 아주 탄탄하다. 2016 리우-2020 도쿄에서 연속해서 금메달을 따냈던 종목 최강자이기도 했다. 조은혜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조은혜는 경기 후 “최선을 다했으나 아직 내가 더 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결점이 없는 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연구하고 분석하겠다. 결점을 찾아내서 다음번에는 더 좋은 경기력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라고 했다.
경기 직후 눈물을 흘린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동작과 기술이 잘 안됐다. 속이 상했다. 그냥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조은혜는 하루 전 열린 사브르 종목에서는 8강에서 탈락한 바 있다.
7년 전만 해도 영화 현장에 있던 이다. 2017년 영화 ‘범죄도시’ 분장팀장이었다. 낙상 사고로 더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 재활 병원에서 우연히 TV 뉴스를 봤는데 휠체어펜싱 장면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우아하고 멋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후 협회에 직접 전화를 걸어 ‘칼잡이’가 됐다. 대회 개막 직전에는 ‘범죄도시’에 출연했던 배우 진선규가 개인 SNS를 통해 조은혜를 응원하기도 했다. 조은혜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범죄도시’ 촬영 때 정말 좋으신 배우셨다. 그때 생각도 나고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조은혜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플뢰레 단체전이 있고, 6일에는 주종목인 에페에 출전한다. 조은혜는 “남은 경기 더 침착하고 집중 있게, 그리고 나를 더 넘어서서 이겨 내고 한 포인트, 한 포인트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뛰겠다. 에페 때는 꼭 결승전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같은 날 플뢰레A 경기를 치른 권효경(23·홍성군청)은 8강에서 중국의 구하이옌에게 패해 패자부활전으로 기회를 엿봤지만, 패자부활전 3라운드에서 주전너 크러이녀크(헝가리)에 14-15로 아쉽게 져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권효경은 “확실히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며 “(상대가 치고 올라올 때) 흐름을 빨리 끊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털어놨다.
아쉬움과 함께 희망도 봤다. “사브르부터 플뢰레까지 하고 나니 경험치가 쌓이는 느낌이 들어 좋다”며 “에페에서는 메달을 꼭 따고 싶고, 혹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후회 없이 즐겁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5일 플뢰레 단체와 6일 주종목 에페에서 또 한 번 금빛 찌르기에 도전한다. raining99@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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