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이범호 감독 “우리는 욕 안했다”

한화 김경문 감독 “욕들어 발끈했다”

진실공방 속 가려진 사실 ‘수비방해’

페라자 왜 야수쪽으로 뛰었나 ‘미스테리’

[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이틀이나 지난 시점에 다시 언급하게 돼 죄송하다.”

KIA 이범호 감독은 8일 광주-KIA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키움과 경기를 앞두고 이틀 전 얘기를 꺼냈다. 주축 선수인 김도영(21)에 관해 때아닌 진실공방이 벌어진 탓이다.

더구나 이 감독은 레전드 3루수 출신이다. KIA는 홈 경기 때 3루 더그아웃을 사용한다. 누구보다 정확하게 페라자의 행동을 지켜봤다는 의미다.

이 감독의 이날 발언 취지는 “코치가 욕설하지 않았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다친 선수 안부를 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서”였다.

전날 잠실에서 LG를 만난 한화 김경문 감독이 요나단 페라자가 5일 광주 KIA전 연장 10회초 삼진 후 상대 벤치에 삿대질한 것에 대해 변명했다. “(페라자의 주장에 따르면) KIA 벤치에서 욕설했다”는 취지의 변명이었다. ‘존중’ ‘예의’ ‘다음에 또 볼 사이’ 등의 텍스트가 동반된, 소속팀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사령탑의 감싸안기 정도로 읽혔다.

이 감독이 하루 뒤 “이틀이나 지난 시점…”이라며 말을 꺼낸 이유는 한화측 변명이 ‘팩트’가 아니라는 강변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친 김도영은 사라지고, 때아닌 욕설 진실공방으로 변질되는 인상이다.

욕했고 안했고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격앙된 상태로 얘기하다보면, 추임새처럼 욕을 섞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추임새든 뭐든 욕설이 입밖으로 나왔다면, 어쨌든 한 것이다. 사건의 본질은 ‘욕설’이 아니므로, 당사자간에 풀면 된다. KIA 코치가 욕설하지 않았는데, 통역이 비속어를 섞었을 가능성이 0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의심이 여기까지 향하면, 진흙탕 싸움으로 변한다.

이번 사건의 문제는 페라자의 주로(走路)가 정상적이었느냐 여부다. 공식 기록으로는 ‘수비방해 아웃’이다. 수비수의 플레이를 주자가 방해했다는 것을 심판진과 기록원 모두 인정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페라자의 주로를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장면이 보인다. 2사 1,2루에서 좌타자인 장진혁이 3-유간으로 땅볼을 쳤다. 중간수비 형태로 유격수 쪽으로 한 발가량 이동해 있던 김도영은 타구를 잘라 들어갔다. 굳이 방향을 정하면 1루와 투수 사이 정도 되겠다.

2루 주자이던 페라자는 ‘딱’소리와 함께 3루로 내달렸다. 2아웃이었던 점, 상대 야수의 포구 실패나 악송구 등 실책 변수가 살아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달린 방향이 잘못됐다.

페라자의 주로는 3루와 홈 사이였다. 통상 홈을 노리는 2루주자는 3루와 정상위치 유격수 쪽으로 스타트한다. 왼쪽으로 턴하는 주로인데다, 회전각을 좁히기 위해서다. 때문에 도루를 노리지 않는 2루주자의 리드 방향은 유격수 쪽이다. 그래서 2루주자 견제를 위해 베이스로 들어오는 유격수와 겹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페라자는 타구로 달려드는 김도영의 동선 방향으로 뛰었다. 70~80년대 야구처럼 야수를 ‘위협’하는 것이 목적이었더라도, 충돌순간에는 주자가 야수의 뒤에 있어야 한다. 수비하는 야수 앞으로 지나가려는 의도였다면, 이미 늦은 때였다. 충돌하기 전 수비수 뒤로 방향을 트는 게 일종의 동업자 정신이자 ‘주루의 기본’이다.

2루와 홈에서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 생기는 시대는 선수보호가 플레이어의 최우선 가치다. 그러나 충돌순간 페라자의 움직임은 분명 왼쪽(홈 방향)으로 전환하는 게 보인다. 부딪혀 넘어진 김도영의 머리가 내야 잔디 끝부분이라는 점도 고의성 여부를 떠나 페라자의 주로가 처음부터 틀렸다는 것을 뜻한다.

KIA 선수단이 크게 화를 낸 것도, 한화 선수들이 사과 제스처를 취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자신을 향한 욕설에 크게 헛스윙 삼진을 당한 뒤 삿대질하는 건, 어떤 말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위협하는 것’과 ‘위해를 가하는 것’은 의도와 결과 모두 전혀 다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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