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이었다. 국내 야구장에 잠자리채 열풍이 불었다. 외야에 잠자리채가 대나무숲을 이뤘다. 어떤 잠자리채는 2층 높이만큼 솟았다.

라이언킹 이승엽의 아시아신기록 홈런공을 잡기 위한 경쟁이었다. 이승엽은 그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2일 롯데전에서 56호 홈런을 터트렸다. 타구는 좌중간 펜스를 넘어갔는데, 물결치던 잠자리채는 외면했다.

56호는 펜스 뒤쪽 공간에서 ’아시아홈런신기록 삼성라이온스 이승엽‘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준비하던 이벤트 직원 두명 앞으로 떨어졌다.

그 직원들은 삼성구단에 기념구를 기증했고 구단은 답례로 3000만원 상당의 56냥(2.1㎏) 황금볼을 그들에게 선물했다. 현재 시세로 56냥은 2억 4000만원 정도다.

미국 메리저리그에선 돌파한 오타니 쇼헤이(30·LA다저스)의 홈런·도루가 초미의 관심이다. 미국에서도 역사적 기념구는 구단에 사례를 받고 돌려주는 경우가 있지만, 많은 경우 경매 시장에 나와 가치를 따진다.

지난 18일 마이애미에서 오타니가 48호 홈런을 쏘아 올렸는데, 그 공을 득템한 19세 여대생은 “주변에서 100만달러 가치라고 하지만 절대 팔지 않겠다. 돈으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특별한 일”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소장하겠다는 거지만, 향후 경매를 통해 팔고 싶은 마음일지도. 그런데 당분간 팔지 못하고 소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타니가 ‘50-50’을 넘어 ‘55-55’를 향하고 있기 때문.

오타니의 50호 홈런은 48홈런이 터진 바로 그 다음날(19일) 나왔다. 이날 마이애미전에서 오타니는 홈런 3개와 도루 2개를 몰아치며 단숨에 ‘51-51’을 기록했다.

역사적 50호 홈런은 7회 타석에서 나왔는데, 타구는 좌측담장을 넘어갔고 주변의 관중이 몸을 던졌다.사람들이 공을 향해 몰렸지만, 외야에 한국처럼 잠자리채는 보이지 않았다. 한 남성이 공을 잡아챘는데, 그는 구장 경비원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50호 홈런볼의 가치에 대해 스포츠전문 경매업체 SCP옥션 관계자는 “30만달러 이상, 50만달러를 넘겨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며 “가격 상한이 없다”고 했다. 소더비 측은 20만달러, 헤리티지 옥션은 10만달러로 예상했다.

최근들어 기념구가 경매에 나온 건, 애런 저지의 홈런공이다.

2022시즌, 뉴욕양키스 애런 저지는 아메리칸리그(AL)에서 62홈런으로 최다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미국 매체 폭스 비즈니스는 250만달러로 가치를 매겼고 양키스 구단은 공을 잡은 이에게 300만달러를 제안했다.

그러나 62호 홈런공은 경매에 나왔고 150만달러에 팔렸다. 구단의 제안보다 경매에서 값이 절반으로 깎인 것. 당시 홈런공은 투자운영사 부사장이 잡았는데, 62호에 대해선 투자에 실패한 듯싶다.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기념구는 1998년 사상 첫 단일시즌 70홈런을 달성한 마크 맥과이어의 홈런공이다. 305만 달러에 낙찰됐다. 득템의 주인공은 소유를 원했지만, 미국세청이 금전적 이득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할수 있다는 전망에 경매에 내놓았다고 알려졌다.

그외 배리 본즈가 지난 2007년 ML 홈런기록을 경신한 756호 홈런공은 그해 경매에서 75만달러에 낙찰됐고 행크 애런이 1974년 당시 기록을 경신한 715호 홈런공은 65만달러에 팔렸다. ​배이브 루스가 1933년 첫 올스타게임에서 친 홈런공은 2006년 경매에서 80만달러에 낙찰됐다.

그렇다면 오타니의 ‘50-50’ 홈런공은 경매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질까. 그리고 오타니가 55홈런, 또는 그 이상을 때려내며 그 홈런공은 50호보다 값질까.

셋 다 경매시장에 나온다면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지겠지만, 만약 잠자리채로 그 기념공 중에 하나만 잡을 수 있다면 선택은 ‘전인미답의 ’50-50’클럽의 문을 열어젖힌 50번째 홈런공이다.

오타니의 경우, 홈런개수의 의미보다 ‘50-50’이 더 의미있기 때문이다.

‘55-55’ 홈런공도 값지지만, 기록구는 대개 ‘50-50’처럼 열개씩 나눠 카테고리를 가져간다. 5개로 나눈건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결국, 마지막 달 착륙보다 첫 번째 달 착륙이 더 기념비적이라는 의미다.

예상컨데, 오타니의 기념구는 프리미엄이 더 붙을 전망이다. 오타니는 미국시장뿐 아니라 야구를 국기로 여기는 일본이라는 배경을 더 가지고 있다. 그곳에선 오타니는 야구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홈런공에 일본 프리미엄이 붙으면 그 수집가격은 상상 이상일 게 틀림없다.

​국내에서는 이승엽의 ​한·일 600호 홈런볼이 2016년도에 1억500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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