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박효실 기자] 세계적인 좀비 시리즈 ‘워킹 데드’부터 영화 ‘미나리’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전성기를 연 스티븐 연이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다빈치모텔’ 강연을 찾은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 배우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국경 없이 유통되며 각광받는 K콘텐츠에 대한 생각 등을 밝혔다.

스티븐 연은 지난 2010년 시리즈의 서막을 시작한 AMC ‘워킹 데드’에서 글렌으로 출연하며 대중적으로 얼굴을 알렸고, 국내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1)로 제1회 골드리스트 시상식 남우주연상, 덴버 국제영화제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했으며,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2023)로 제29회 크리틱스초이스상 시상식 TV영화 부문 남우주연상,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 제75회 에미상 TV 미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섯 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스티븐 연은 영어로 강연했으나 중간중간 또렷한 발음의 한국어를 섞어 가며 썼다. 그가 힘들었던 무명 배우 시절을 떠올리며 “고생 많이 했어,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스티븐 연은 미국 시카고의 극단 ‘세컨 시티’ 멤버로 즉흥 코미디를 하다가 배우로 데뷔했다. 특히 ‘워킹 데드’에서 글렌으로 출연해 로렌 코헨(매기 역)과 함께 무리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약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코미디를 하다가 어느 시점인가에 한계를 느꼈고, ‘높이 못 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배역을 따기 힘들어 정말 힘들었는데, 친한 지인이 ‘매일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힘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3개 방송 시상식을 휩쓴 ‘성난 사람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스스로와 서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라고 말했다.

블랙 코미디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두 사람 사이에서 난폭 운전 사건을 기발하게 다룬 작품으로 스티븐 연, 앨리 윙, 조셉 리 등 아시아계 미국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스티븐 연은 앞으로 구상하는 작품에 대해 “어떤 영화를 찍고 싶다거나 어떤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도 계획한 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어떤 기회가 오는지 지켜보려 한다”라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K팝의 글로벌 공세에 이어 영화 ‘기생충(2019),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021), 디즈니+ ‘무빙’ 등 전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 중인 K콘텐츠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진 건 부인할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다. ‘K’로 규정할 수 있지만, ‘K-드라마’가 아니라 그냥 ‘드라마’다. 포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시청자는 이미 경계 없이 하나의 흥미로운 콘텐츠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공급자인 한국이 한국적으로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고민해 내부통제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것.

스티븐 연은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K-콘텐츠로) 포장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고, 그게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런 건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나이지리아에 사는 사람이 여러분이 만든 유튜브를 볼 수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신의 표현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스티븐 연은 내년 1월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로 관객들을 만난다. gag11@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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