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192일 간의 열전이 1일 막을 내렸다. 720번째 경기가 치러진 시간에 사상 최초로 5위 결정전이 열렸고, 숨 쉴 틈도 없이 포스트시즌으로 전환한다. 폭발적인 팬심 덕분에 풍성한 기록으로 마무리한 2024 KBO리그 정규시즌 얘기다.

정치권의 잇단 헛발질과 갈라치기, 경기침체 등이 맞물려 웃을 일 없던 2024년은 KBO리그에 도약의 한 해였다. 역대급 흥행에 다양한 진기록이 쏟아진 덕분에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속 유일한 지속가능한 아날로그 산업’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구단 관계자, 팬 모두 함박웃음으로 막을 내린 정규시즌 10대 뉴스를 스포츠서울이 ‘마음대로’ 선정해봤다.

◇기적처럼 찾아온 1000만 관중

올해 KBO리그는 흥행 빨간불로 시작했다. 개막 직전 터진 악재도 있었지만, 여름레이스가 한창일 때 2024 파리올림픽이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야구는 정식종목에서 제외됐지만, 국민 관심사가 올림픽에 쏠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정규시즌 종료까지 보름 이상 남겨둔 9월15일, 1000만 관중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말이 좋아 1000만 관중이지, K-콘텐츠를 대표하는 영화계에서도 ‘초대박 흥행’의 지표로 기념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어려운 일을 KBO리그가 출범 42년 만에 해냈다.

경기당 평균 1만4000명 이상 관중이 192일, 720경기 내내 각 구장을 채운 셈이다. KBO는 “이제 KBO리그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했다”고 자평했다.

스포츠서울이 10개구단 체제로 전환한 2015년(1군 기준)부터 꾸준히 제기한 ‘KBO리그의 라이벌은 해외리그가 아닌 K-팝, K-콘텐츠’라는 이유를 햇수로 10년 만에 증명한 셈이다.

◇디펜딩챔프 LG 또 새역사

‘디펜딩 챔피언’ LG는 비록 올시즌을 3위로 마무리했지만,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8개구단 체제이던 2009년 롯데가 세운 단일시즌 홈 구장 최다관중(138만18명) 기록을 14년 만에 넘어섰다.

우승 프리미엄에 KIA 삼성 한화 롯데 등 원정팀의 폭발적인 기세가 영향을 끼쳤지만, 잠실구장에서 LG가 홈 경기를 치른 73경기에서 139만7499명(경기당 평균 1만9144명)을 기록했다.

KT SSG NC 키움 등 이른바 ‘스몰마켓’ 팬덤이 구장을 조금만 더 채우면, 경기당 평균 2만명 시대를 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잠실구장은 한시즌 144경기를 모두 치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기당 평균관중이 2만명에 달하면 288만명을 돌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속적인 1000만 관중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LG의 분전과 관중동원 능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 시즌이다.

◇7년만에 울려퍼진 ‘남행열차’

파격이라고 볼 수 있는 ‘초보 사령탑’을 선택한 KIA가 2017년 이후 7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신임’ 이범호 감독이 이끈 KIA는 정규시즌 종료를 2주가량 앞둔 9월17일 시즌 52패(83승2무)째를 당하고도 우승 영예를 안았다. 고졸(동성고) 3년차 김도영이 공격에서, ‘대투수’ 양현종이 마운드에서 쌍끌이 활약을 펼친 덕분에 얻은 쾌거다.

이범호 감독은 초보 답지 않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4월부터 팀을 선두에 올려놓은 뒤 87승2무55패 승률 0.613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준비된 사령탑’이라는 평가 이유를 증명했다.

단일시즌을 기준으로 삼으면 해태시절인 1991년을 포함해 역대 7번째 우승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2017년까지 11차례 한국시리즈 무대에 진출해 단 한 번도 패권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한 만큼 역대 8번째 통합우승이자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최다관중과 함께 열린 ‘김도영 시대’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을 따낸 KIA는 올시즌 역대 최다인 125만9249명이 광주-KIA 챔피언스필드를 찾았다. 변수를 제외하고, 광주 인구의 대부분이 한 번은 구장을 찾았다는 계산이 나올만 한 숫자다.

KIA의 폭발적인 관중몰이는 비단 팀 성적뿐만은 아니다. 고졸(동성고) 3년차이자 ‘포스트 이종범’으로 주목 받은 김도영(21)이 전대미문의 기록에 도전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김도영은 4월 한 달간 사상 최초로 10홈런-10도루를 달성하더니,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넘어 40홈런-40도루에 도전해 팬들의 눈길을 집중시켰다.

최종성적은 38홈런 40도루였지만, ‘젊은 스타’의 탄생은 그 자체로 KBO리그의 팬덤확장의 기폭제가 됐다.

심지어 김도영은 9월30일 치른 팀 최종전에서 득점을 추가해 아시아 단일시즌 최다타이 기록인 143득점을 달성하며 ‘최연소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아로 새겼다.

◇김도영에 가려진 ‘대투수’ 전성시대

KIA 우승 여정에 김도영이 ‘씬스틸러’ 역할을 했다면,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한 선수들은 ‘서사’를 완성하는 동력이 됐다.

이 중 가장 빛난 이는 ‘대투수’이자 ‘타이거즈의 심장’ 양현종(36)이다.

외국인 투수들의 릴레이 부상 속 선발 로테이션을 지킨 양현종은 29경기에 선발등판해 11승(5패) 평균자책점 4.10으로 최선을 다했다.

15차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12위, 다승 공동 9위, 탈삼진 17위,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공동 8위(1.25) 등 각 부문 정상급에 이름을 올렸다.

도드라진 기록은 올해도 171.1이닝을 던져 10연속시즌 170이닝 이상 던진 ‘철완’으로 이름을 올린 점이다. 덕분에 역대 두 번째 2500이닝을 돌파했다.

양현종은 2076개의 삼진을 빼앗아낸 기록으로 이미 ‘늘 푸른 소나무’라는 것을 증명하며 여전한 전성시대라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정복 마친 ‘코리안 몬스터’ 귀환

시즌 흥행 요소를 반추하면, 단연 첫 손에 꼽히는 게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7)이 친정팀인 한화로 전격 복귀를 선언한 사실이다.

LA다저스와 토론토에서 186경기를 치른 류현진은 빅리그 통산 78승48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안고 태평양을 건넜다.

류현진의 복귀에 공을 들인 한화는 8년간 총악 170억원을 안기며 12년 만의 복귀를 환영헸다.

자동 볼판정시스템(ABS)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8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10승8패 평균자책점 3.87로 ‘한화의 유일한 에이스’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곰표’ 올드보이 새 활력소 등장

류현진의 귀환만큼 관심사는 이른바 ‘곰표 올드보이’들의 재취업 여부였다.

이른바 ‘두산 왕조’를 구축한 김태형 전 SBS 해설위원은 기대(?)대로 사직에 둥지를 틀었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화끈한 야구”를 화두로 꺼낸 김태형 감독은 세대교체와 체질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러나 7연속시즌 포스트시즌 실패 아픔을 겪어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김태형 감독 이전에 ‘화수분 두산’을 완성한 김경문 감독은 시즌 순위싸움을 본격화하기 직전인 6월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야인에서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경문 감독은 “한화를 강팀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시즌 막판까지 5위싸움을 전개했지만, 정규시즌 8위(66승2무76패)로 아쉬운 ‘복귀 시즌’을 치렀다.

◇굿바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김경문 감독의 복귀는 그 자체로 ‘보살팬’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가뜩이나 한화 홈 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는 ‘직관러’들의 행렬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던 곳.

실제로 한화는 올시즌에만 47차례 매진(청주구장 포함)을 기록하는 등 KBO리그 역대 최다 매진 기록을 새로 썼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화 전신인 빙그레시절을 포함해 프로 원년 OB베어스 홈 구장이기도 한 대전구장이 올해로 ‘프로시대와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다.

한화는 2025시즌부터 바로 옆에 건립 중인 베이스볼드림파크로 둥지를 옮긴다. 1964년 문을 열어 올해 환갑을 맞이한 대전구장은 정우람의 은퇴경기로 역사의 한켠으로 사라졌다.

◇MZ세대와 호흡한 OTT속으로

1000만 관중의 숨은 공신을 꼽자면, 쇼츠(shots) 밈(meme) 등으로 대표되는 숏폼들이다.

유튜브나 틱톡 등 이른바 ‘MZ세대의 놀이터’에 KBO리그가 포함된 건 관중 폭발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개막 전 ‘유료화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CJ ENM이 뉴미디어 중계권 사업자로 선정된 뒤 자사 OTT 플랫폼인 티빙을 통해 MZ세대와 소통한 건 ‘1000만 관중 시대를 견인한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티빙은 경기영상뿐만 아니라 재가공 등 2차저작물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파격을 단행했고, 덕분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많은 쇼츠와 밈 등이 쏟아졌다.

‘삐끼삐끼’로 일약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한 KIA 이주은 치어리더는 리그 흥행의 위력을 대표하는 사례로 남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명언은 정규시즌 최종일까지 이어졌다. 2일이 포스트시즌(PS) 시작일인데, 올시즌 KBO리그는 PS 개막 하루 전에서야 정규시즌 최종전을 치렀다.

롯데와 NC의 이른바 ‘낙동강 더비’가 192일 간 대장정의 마침표였는데,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또다른 ‘마침표’를 찍은 기묘한 풍경이 나왔다.

정규시즌 144경기를 소화하고도 우열을 가리지 못해 PS진출 마지막 티켓의 주인이 나오지 않은 탓이다. 정규시즌 최종일에 KT와 SSG가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사상 첫 ‘5위 결정전’을 치르는 진풍경은, 올시즌 KBO리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를 대변하기 충분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야구는 2일부터 PS로 또다른 ‘전설’을 집필한다. 스포츠서울은 PS 기간에도 5개팀이 써내려가는 각자의 서사를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들여다보고, 야구팬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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