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X발 X 같네.”

영화 ‘보통의 가족’ 혜윤은 엄마 지수(수현 분)와 리모컨 다툼을 벌인다. 사이가 좋은 모녀라면 화기애애한 장면으로 그렸을 법하지만, 어린 새엄마에게 욕을 내뱉는다. 리모컨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집안 권력 서열 2위가 정해진다. TV를 보는 모녀의 투 샷이 불쾌한 긴장감으로 전달된다. 아빠 재완(설경구 분)는 모르는 여자 간 기싸움이다.

홍예지는 지난 14일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극 중에서 욕을 처음 했다. 같은 회사 정만식 선배께 욕을 배우면서 익혔다. 정말 욕만 두 시간 동안 했다”며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 욕하는 걸 유심히 들었다. 각자 어미를 다르게 하는 것도 봤고, 어디를 길게 해야 찰지게 나오는지 관찰했다”고 말했다. 욕설로는 충무로 대가로 꼽히는 설경구가 “욕을 아주 찰지게 잘하더라”며 칭찬할 정도였다.

혜윤은 사촌동생 시호(김정철 분)과 함께 노숙인을 폭행해 숨지게 한다. 이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나도 해볼래” 오락실 게임을 하듯 해맑게 말한다. 이윽고 이어진 무서운 발길질에 ‘내 자식이, 내 조카가 행여나 저러면 어쩌나’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홍예지는 “노숙자를 폭행하는 장면을 여러 개 찍었다. 정말 사실적으로 찍은 것도 있는데 감독님이 빼셨다”며 “흐릿한 CCTV 화면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오히려 상상되고 무섭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혜윤이 가진 감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뒤 부재한 자리를 아빠가 빨리 채운 것에 대한 반항적 감정이 묻어나오게 연기했다. 부녀간 대화 단절도 컸다. 대화는 결국 혜윤이 살인이라는 큰 사고를 친 뒤 재완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친구 얘기라며 죄를 경감할 방법을 묻는다. 재완은 딸 일임을 직감한다. 주변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사무실 블라인드를 내린다.

“촬영을 제법 길게 했어요. 제가 놀란 건 설경구 선배님 연기였어요. 허진호 감독님이 디렉팅을 계속 다르게 주시면 그때 맞춰서 바로바로 연기를 했어요. 저렇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재완은 사건을 은폐하려다 생각을 바꾼다. 혜윤과 시호가 노숙인 사망 당시를 에필로그 식으로 즐겁게 깔깔대는 걸 보고 깊은 상념에 빠진다. ‘아이들이 뭘 몰라서’ 그랬다는 어른들 생각을 뒤통수 얼얼하게 가격한다.

재완이 실제로 딸을 자수시켰다면 혜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홍예지는 “아마도 아빠를 흔들었을 것 같다. 울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며 “그러면 아빠가 마음을 바꿀 거라는 걸 알았을 거다. 아빠가 의견을 바꾼 줄 안 되지 않았나. 자식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통의 가족’엔 보통 이하 인물이 살아 숨 쉰다. 갖은 방향으로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려 있는 영화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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