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폼 자체는 깔끔했다. 투수라면 실투하는 게 당연하다. 굳이 따지면 하필 그 타이밍에 그 궤적으로 공을 던졌으니, 봅배합 실수라고 핑계삼을 수도 있다. 어쨌든, 투수에게 홈런은 그림자 같은 거다.

문제는 ‘깔끔한 폼’이다. 1회부터 불안했다. ‘더 잡아야 하는데…’에서 ‘너무 깔끔한데?’로, ‘하이패스트볼이나 원바운드여도 (좌타자) 몸쪽 커브를 섞어야 할텐데’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고퀄스’ 고영표(33·KT) 얘기다.

실패할 수 있다. 수년째 국제대회에서 소위 죽을 쑤는 야구대표팀. 1000만 관중이라는 신기원을 등에 업고 출전했으니, 첫 경기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마운드 높이, 국내와 다른 인조잔디, 구장 소음 등에 국제대회 때마다 논란이 되는 심판 자질 등에 숨기에는 성적이 너무 안좋았다.

때문에 첫 경기 선발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책임감이 너무 강하면 부담이 되므로, 젊은 선수 중심의 이번 대표팀에서 류중일 감독이 고영표를 선택한 건 일견 이해가 된다. 더구나 대만 대표팀은 전통적으로 ‘잠수함 계열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른바 ‘표적 선발’로 잠수함을 선택하는 것 역시 관습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국 야구 풍토를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홈런 두 방을 맞지 않았더라면, 고영표는 첫 단추를 잘 끼운 구국의 영웅(?)이 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임감독제를 포함한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물음표가 생겼다. 고영표가 선발로 나선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투구 템포나 타이밍에 관해 설명할 코치진이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어서다. KBO리그는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대만이든 일본이든, 심지어 중국에서도 우회경로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KBO리그를 현미경분석할 수 있다.

한국 대표팀 면면을 상대가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표팀 코치진이나 전력분석팀이 상대국 전력분석팀만큼 우리 선수를 파악하고 있느냐는 따져볼 문제다. 실력이 떨어져 패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지는 건 ‘준비’에 관한 영역이다. ‘그럴줄 몰랐다’ ‘당일 컨디션이 안좋았다’ 따위의 말로 덮을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명색이 국가대표 아닌가.

국제대회는 상대를 분석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우리 선수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나를 알아야 상대를 알 수 있다는 건 손자병법에도 있을 정도로 전쟁에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불린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부터 연이은 국제대회 성적 하락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국가대표 운영 시스템의 난맥상을 의심케 한다.

선수 몸값이 십수억원을 우습게 돌파하는 데다 소속팀이 있는 선수들이어서 코치진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선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완벽히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KBO리그는 이정도 수준은 아니다. 때문에 코치진의 세심한 관찰과 원포인트 코칭이 필요하다.

잠수함 투수가 깔끔한 폼으로 던지는 건, 시속 150㎞ 이상 강속구 투수가 아닌 이상 매우 위험하다. 평균 구속이 140㎞를 밑도는 경우가 많아서 구위로 압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수함 투수는 키킹동작에서 스트라이트 과정에 자신만 아는 ‘멈춤 동작’이 있다. 한 발로 서 있는 시간이든, 스트라이드 과정이든, 디딤발이 지면에 닿기 직전이든 타자 반응과 움직임에 따라 자신이 조정하는 타이밍이 있다.

고영표의 투구는 ‘멈춤 동작’이 거의 없었다. 조급하거나, 압박감을 느꼈거나, 환경이 어색하거나, 컨디션을 과신할 때 가끔 드러나는 좋지 않은 습관이 하필 이 경기에 나왔다. “몸 타이밍 점검 한 번 하자”는 말 한마디였다면, 조정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영표도 알고 있는 ‘나쁜 습관’이므로 이해하고 조정할 기술도 갖고 있다.

야구는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하느냐의 싸움이다. 투수와 타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코치진도 마찬가지다. 코치진이 볼 수 없는 부분은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녹여야 한다. 국제대회는 더이상 한·미·일·대만의 잔치가 아닌 시대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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