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배우 임후성은 연극으로 연기를 지어왔다. 영화 ‘한 채’로 스크린에 도전하는 건 모험이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즐겁게 연기했다. 이 영화가 지닌 물성(物性)이 연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단 생각에서다.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앙각(仰角·촬영 대상물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찍는 그림) 샷이 자주 등장했다. 관객이 연극 무대를 보는 시선이 그려졌다.

‘한 채’는 가족을 짓는다. 문호(임후성 분)는 장애를 가진 딸 고은(이수정 분)을 타인에게 곱게 보내야 한다. 결국 그는 언젠가 죽기 때문이다. 죽음을 모르는 고은에게 아빠는 영원이지만, 함께 갈 수 없는 존재다. 문호는 위장결혼을 시도한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에 눈이 번쩍 뜨인다. 브로커를 통해 도경(이도진 분)을 소개받는다. 위장결혼이 시작된다.

“처음 만나는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에서 번뇌하죠. 아직은 고은이랑 더 살 수 있지 않나. 세상에서 믿을 만한 존재는 나인데.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미루다가는 손 쓸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 그런 충돌이 벌어지죠. 얼마 안 되는 복도 걷는 제 느낌은 거칠었죠. 미지의 상대 만나기 전 흥분 상태처럼.”

모든 게 못마땅하다. 그렇지만 거친 문호는 수동적인 자세여야만 한다. 가장 주체적으로 딸의 안위를 걱정할 때지만 ‘한 채’ 집을 마련하기 위해 상대에게 굴종해야만 한다. 아비니까.

“도경이라는 친구가 왔을 때 겉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봤죠. 의심은 계속됐죠. 너는 내가 아니지 않냐. 너도 가끔 열받으면 고은이에게 소리 지르겠지. 그래도 좋다. 기댈 곳을 찾아야 한다. 현실엔 ‘키다리 아저씨’가 없으니까.”

출생부터 학대받은 몸이다. 그랬기에 아비는 학대에 익숙할 거라 짐작한다. 면역체계도 갖춰졌을 거로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 때려도 버터겠거니 싶다. 무책임할 거란 주변의 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로지 고은의 생존이 문호가 가진 목표다.

“이렇게 던져놔도 돼요?”

도경이가 못마땅하다는 듯 질문을 던진다. 문호는 그제야 안심한다.

‘이 자식이 괜찮네.’

몸도 마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단 방증(傍證)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놈이란 걸 아는 순간, 문호는 ‘씩’하고 웃는다. 공기가 누그러진다. “밥 먹고 가라”는 말로 가족 짓기가 완성된다.

‘한 채’는 정범, 허장 감독이 공동연출했다. 둘의 이름 자수는 같지만, 그 외 모든 게 다르다. 정 감독은 창조성이 강하지만 허 감독은 구체성이 강하다. 정 감독이 멋지게 찍으면 허 감독이 오케이를 내린다.

연극에선 임후성이 감독이었다. 셋이 부딪힌 날도 있었다. 그럴 땐 위로를 건넸다.

“연극은 관객의 눈으로 보죠. 공학적인 카메라가 보면 인간의 눈과 다른 것이 형성돼요. 누차 그 얘기를 했죠. 영화는 전체 공간이 움직이라는 동적 이미지 속에 긴장감이 생겨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동작하는 느낌이에요. 연극과 달라요. 그래서 영화가 너무 좋구나. 좋은 기회구나 싶었죠.”

파도가 잠잠해지며 가족이 만들어진다. 고은과 도경은 비로소 부부가 된다. 낯선 상황의 연속이다. 혹자는 개연성이 없다고 일갈할지 모른다.

“어느 날, 미국 한 평론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에게 공개서한을 보냈어요. ‘당신 인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다. 논리성도 개연성도 없다. 극작 규칙에 맞지 않는다. 함부로 해도 되냐’고 말이에요. 그러자 헤럴드가 딱 한 줄을 남겼어요.”

‘당신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 삶은 논리적으로 규정될 수 없단 뜻이었다. 그 맥락은 임후성에게도 곧장 연결된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볼트’(2023)로 등단한 그도 당선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늘의 관습 앞에서 순결한 존재의 먼 얼굴을 회상한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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