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배신의 시대다.

국민이 뽑은 최고 권력은 군대를 동원해 주권자에게 총을 겨누고, 입법기관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이것도 모자라 미소를 머금은채 담화랍시고 발표한 내용이 ‘우리당에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위헌적 사과였다.

선출직인 대통령은 개인이 아님에도 제 맘대로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떼를 썼고, 여당은 그 말만 믿고 이른바 수렴청정을 허락하는 촌극을 빚었다.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잔뜩 모인 ‘검찰 공화국’은 대놓고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극소수 인원과 이들이 임명한 부역자들 손에 자행되고 있다. 2024년 12월은 그래서 ‘배신의 시대’다.

최근 야구계 화두는 또다른 ‘배신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끝판왕’이라는 별칭이 곧 대명사인 오승환(42·삼성)의 거취를 두고 뜬금없이 LG행 설(說)이 쏟아졌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얘기가 돌았고, 보도까지 나왔다.

오승환의 소속팀 삼성은 8일 오전 부랴부랴 “20인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재미있는 건 “대표이사 재가가 남았다”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발언이다.

많은 팬은 지난해 한화로 둥지를 옮긴 김강민(은퇴)을 떠올렸다. SK시절부터 SSG까지 원클럽맨이던 김강민은 2차드래프트 때 호보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화에 지명됐다. 23년간 1900경기 이상 뛰며 네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프랜차이즈 스타는 허무하게 연고도 없는 팀에서 1년간 41경기를 더 뛴 뒤 은퇴를 선언했다.

일명 ‘구단주 픽’으로 SSG 창단 멤버로 합류해 세 시즌을 활약한 뒤 명예로운 은퇴투어 기회까지 얻은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의 행보를 보면, SSG에 대한 김강민의 배신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트레이드를 포함한 이적은 프로야구 선수의 숙명이기는 하다. 그러나 김강민이 한화에 지명된 건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야구계 전체의 예우도, SSG와 한화 팬에 대한 예의도 아닌 지명이라는 시각이 강했다.

야구 선수를 바라보는 구단의 풍토는 늘 그랬다. 라이온즈를 응원하다 이른바 ‘팀 세탁’을 한 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만수, 양준혁을 그렇게 버리고, 해태 출신 인사로 코치진을 구성하더니 돈을 퍼부어 우승하는 모습에 실망해서”라는 의견이 가장 많다. 배신감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삼성의 인사원칙이 ‘성과주의’라고는 해도, 야구단의 ‘프랜차이즈’ 가치는 정량평가로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승환의 뜬금없는 LG행 루머도 샐러리캡이나 세대교체 따위의 이유를 들어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이번 루머에 대한 삼성의 대응이 “오승환은 보호선수일 것”이라고 미온적으로 나온 점은 아쉽다. 오히려 “KBO리그 마무리 투수의 대명사인만큼 내년에는 은퇴투어를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예우로 마지막을 준비할 것”이라고 얘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보호선수 명단은 애초 보안사항이지만, 20년 가량 몸담은 프랜차이즈 스타라면 가족과 다름없다. 가족은 건드리리지 않는 게 상호간 예의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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