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사무국 직원들은 회원 단체에 봉사하는 노예가 아니다. 엄연한 직장이고, ‘삶의 터전’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최근 ‘가혹행위’ 논란이 불거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피해 직원의 눈물 짙은 호소다. 회원(선수)들의 단체인 KPGA에서 비회원인 사무국 직원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KPGA 수장인 김원섭 회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았다. 김 회장은 ‘가혹행위’ 피해 직원은 외면한 채 형식적인 가해자 징계와 사과문을 내놓으며 ‘논란 막기’에 급급했다.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렸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약 1년간 지속된 한 임원의 욕설·폭언·협박 등 가혹행위는 피해 직원의 ‘극단적 선택’이란 생각까지 몰고 갔다. 피해자가 11월 18일 이 같은 사실을 KPGA에 신고한 이후에도 해당 임원의 2차 가해가 버젓이 자행됐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혀질 수도 있었다. 김 회장은 지난 19일 언론에 보도된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피해 직원을 포함한 전직원을 불러 고개 숙여 사과했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무거운 마음으로 사과한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에 큰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김 회장의 ‘진정성’에 물음표가 생긴다. 왜 조속한 사과와 지원책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지난 23일 KPGA는 협회명으로 형식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피해 직원에 대한 사과나 지원책이 빠진 ‘빈껍데기’였다. 해당 사건이 스포츠윤리센터에 신고·접수되며 논란이 더 커지자, 김 회장은 피해 직원에 대한 사과와 사건 수습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가해 임원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에 처음 신고됐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해당 임원의 폭언·욕설이 자행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KPGA 한 직원은 “지난해 11월 23일 김원섭 회장이 당선된 이후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에도 해당 임원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당시 몇몇 직원들이 해당 임원의 ‘직원들 대상으로 빈번한 욕설 및 폭언, 괴롭힘’ 등에 대한 심각성을 진술했지만 당시 인수위원(상당 수가 현 경영진)들이 이를 묵인했다”고 꼬집었다.
초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터질 게 터졌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마지 못해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 지원 방안이나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명확히 내놓은 것도 아니다. ‘빛 좋은 개살구’격이다.
이는 단순히 KPGA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체육계에 만연해 있는 고질병이다. 스포츠업계 종사자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체육 단체장들의 부패, 비위 등이 난무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청렴도 최하위 평가를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체부 유인촌 장관이 외친 체육계 개혁과 쇄신은 그저 말뿐인 허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번 KPGA ‘가혹행위’ 논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같은 비상식적인 ‘가혹행위’가 다른 체육단체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폭언·욕설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KPGA 가혹행위 사건이 스포츠단체의 위계 갑질 행위 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km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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