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처음에 영화 만들자고 했을 땐 낯부끄러워서 안 하려고 했어요. 고민 끝에 흥행을 떠나 영화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2일 개봉한 영화 ‘퍼스트레이디’의 장르는 문제적 다큐멘터리다. 적잖은 정치 다큐멘터리가 나왔지만, 권력의 심장을 정조준한 작품은 이례적이다. 서울의소리 이명수 활동가가 콘텐츠의 중심이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아내이자 코바나컨텐츠 대표인 김건희에게 접근하면서 얻은 정보를 영화에 담았다. 사기·주가 조작·무속·국정농단·뇌물 수수 등과 연관된 김 대표의 실체를 단번에 알 수 있다. 12.3 계엄 정국 바람에 힘입어 개봉 18일 만에 8만 관객을 동원했다. 손익분기점이 코 앞이다. 흥행이 어려운 정치 다큐멘터리로는 커다란 성과다.
이명수 활동가는 지난 26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의소리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7시간 녹취록이나 디올백 수수 사건은 기록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사안을 이해하고 투표할 때 더 올바른 판단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30대 후반까지 사업가이자, 영업맨으로도 살았다. 2013년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때부터 캠코더를 들고 나가 각종 현장을 기록했다. 2020년 이른바 조국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활동가의 렌즈는 윤석열 부부로 향한다.
2021년 7월 무렵 김 대표와 첫 통화가 연결됐다. ‘퍼스트레이디’의 출발점이다. “언론 인터뷰는 안 하겠다”는 김 대표에게 “억울한 건 없으세요?”라고 던졌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받은 김 대표는 50분 넘게 술술 자기 이야기를 남겼다. 첫 날 누나 동생이 됐다.
“제가 김 대표 같은 사람들을 잘 알거든요. 돈 있는 사람 한몫 잡아서 편히 살 생각만 해요. 김 대표는 돈과 권력을 모두 노렸어요. 이건 특이 케이스예요. 그 주위를 모두 취재했죠. 가족부터 지인, 친척, 관계자까지, 김건희를 아는 사람은 거의 다 만났어요. 그 내용이 영화에 다수 담겼죠.”
제작 기간은 3년에 가깝다. 올해 3월에 제작을 마쳤다. 6월 개봉이 목표였으나, 불발됐다. 최고 권력에 항거한 문제적 작품이 밖으로 나오는데 우여곡절이 클 수밖에 없다.
“제작 초기엔 크라우드 펀딩조차 쉽지 않았어요. 다 만들고 나선 배급사가 나타나지 않았죠. 정치 다큐멘터리 개봉 후에 영화계를 보복하는 사례가 많았거든요. ‘그대가 조국’ 개봉 이후에 영화계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던 것처럼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또 유튜브를 폄훼하는 시선이 있어요. 실제로 가짜뉴스가 난무하고요. 영화로 의미 있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개봉 직전까지 고난이 있었다. ‘퍼스트레이디’ 시사회 다음날인 3일 오전 10시 서울의소리와 이 기자 자택에 경찰의 압수수색 조치가 있었다. 지난 9월 공개한 김대남 대통령비서실 시민 소통비서관 녹취록에 이철규 국회의원(국민의 힘) 관련 내용으로 고발당한 건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엔 계엄령 선포가 있었다.
“드라마 같은 일이에요. 저희가 계엄령 선포의 트리거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김건희 이모와 고모가 나눈 대화를 영상으로 올렸거든요. 김건희가 자기 편이라 생각했던 친척이 저와 대화를 나눈 걸 알고 충격받았을지도 모르죠. 계엄 정국 바람을 타서 영화가 관심은 받은 것 같은데, 나라가 혼란스러워서 걱정입니다.” intellybeast@sportsso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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