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배우 문근영이 깨질 듯 투명한 소녀의 감성을 보여줬다.

지난 2월 급성구획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몇 차례 수술을 받는 등 투병 소식으로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문근영이 이제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25일 개봉한 새 영화 ‘유리정원’(신수원 감독)과 함께 전하며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데뷔초 ‘국민여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창 활약하다가 성인이 되고부터 성숙한 면모를 강조하던 문근영이 이번 영화로 새삼 어린 시절로 회귀한 듯 소녀 같은 순수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유리정원 포스터 문근영

‘유리정원’은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문근영 분)이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 맞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겨 어릴 적 자랐던 숲 속으로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세상과 등지는 재연이 됐던 문근영의 마음을 들어보니 두 사람은 어딘지 많이 맞닿은 면이 있었다.

-독특한 영화다. 이 영화에 나선 이유는.

찍기는 1년반도 더 전이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너무 좋았다. 어떤 책이든 마음이 동하는게 있는데 ‘유리정원’은 한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독특한 분위기가 글에서 느껴지는게 쉽지 않은데, 이건 내 나름대로 그 분위기가 영상으로 형상화됐다. 캐릭터도 너무 하고 싶었다.

-캐릭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상처를 받고 세상을 등지고 숲으로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자체보다는 왜 상처를 받았는지, 왜 숲을 선택하는지, 왜 유리정원으로 가는지 궁금했다. 그걸 더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배우로서 잘 표현하고 싶었고, 보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었다.

-캐릭터와 싱크로율은.

잘 모르겠다. 촬영하기 전에 나랑 닮은 점을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촬영에 들어갔고, 촬영 후에는 내가 재연이 같고, 재연이가 나 같아서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더라. 지금으로서는 그냥 나를 보는 느낌이다. 재연이랑 나는 분명히 다르긴 한데,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재연이가 있는 거고, 머리에도 담고 몸에도 담고, 그렇게 살고 나면 ‘나랑 동일한 인물이에요’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상처를 크게 표현하지 않는 재연이었다.

맞다. 재연이는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상처가 클 수는 있지만,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감정이나 표현하는 정도가 적당해야지 캐릭터를 잘 전달할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나도 감정이나 상처를 막 드러내는 편은 아니긴 하다.

-어릴 때부터 활동하고, 많은 경험을 해서 그런가.

경험은 좋은 자양분이 된다. 그래도 모든 경험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는 사람마다 다른거 같다. 어떤 경험을 하든 그걸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주는 힘은 엄청난 것 같다. 그래도 아주 많은 경험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 나이만큼, 살아온 시간 만큼, 많지도 적지도 않은 경험을 한 것 같다. 아니면 내 나잇대에 경험할 수 있는 걸 다 경험하지 못한다는 생각도 든다.

문근영

-그래도 최근 투병은 남다른 경험이었을 것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을수도 있다.

건강면에서는 그럴수도 있다. 그래도 아프고 나서 생각이 바뀌고 그러진 않았다.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생각하는게 건강 회복에 도움이 안될 것 같았다. 그냥 이참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져야지 했다.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프기 전에도 항상 했다. 아팠던 경험으로 인생의 새로운 답을 얻지는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잘 살아야겠다, 멋있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면,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 괴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막 살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잘 살아야겠지만, 이제는 ‘어떻게’에 대한 집착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 문근영은.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그때의 생각이고, 그때의 행동인데, 사람은 변하는 건데, 그걸로 과대평가되는 것도 부담스럽고, 안 좋은 평가를 받을 때에는 힘들다. 그게 인간 문근영으로 살아갈 때 힘들더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할 일도 의식해서 하게 되거나, 의식해서 안하게 되더라. 어떤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바로 상처받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 게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한다. 나란 사람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게 조금 무섭다. 연기는 내가 하는 거긴 하지만 실제 내가 아니다. 연기를 통해 표현하는 건 괜찮은데, 온전히 문근영을 보여주는 건 무서운 것 같다.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진다.

시선을 많이 받는 직업이다. 시선에서 자유로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들이 있다. 아무리 내가 신경 안 쓰고 거리를 다니려 해도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예 밖을 안 나가고 지낼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신중해진 면도 있는데, 그렇게 지내온 시간들이억울하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이제 30대다. 어릴 때와 연기하는 마음도 다를 것 같다.

그냥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의 삶이 복잡하다는 것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고, 연기에 대해서도, 연기를 하는 내 모습에 대해서도 인지하게 되는 게 많아졌다. 알게 되고 신경쓰게 되는 것도 점점 늘어났다. 예전에는 하나, 두개, 세개 가지고 고민했다면, 지금은 열개, 열한개씩 신경쓰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했는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네가 너무 욕심이 많아진 것 아니냐”는 말도 하더라. 그런데 욕심이라 해도 내가 편해지자고 고민해야 할 걸 무시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

-한동안 뜸했으니 이제 활발히 활동할 계획인가.

좋은 작품을 만나고, 열심히 잘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났을 때 재밌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개인적인 마음 상태나 지금의 취향은 따뜻함이 가득한 작품을 하고 싶다.

ch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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