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감독
야구 국가대표팀 선동열 감독.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한국 야구대표팀 선동열 감독의 어록 중에 ‘걱정반 우려반’이라는 말이 있다. KIA 사령탑시절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에 걱정을 가득 안고 그라운드에 나와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들로 경기를 치러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품고 경기를 지켜본 솔직한 심정이다.

4일 잠실구장에서 소집하는 ‘선동열호 1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내다보는 대장정의 첫 발인데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민들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시작하는 첫 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 감독은 “대표팀은 대회 시점에 최고의 선수를 선발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큰 그림을 그려보면 도쿄올림픽까지 젊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성장시키는 과정도 중요하다.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도쿄 올림픽 주축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 앞의 성적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봐달라는 완곡한 부탁이다. 일본, 대만과 단 두 경기(결승전 제외)에 불과하지만 젊은 선수들이 국제대회 경험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야구의 미래에 던지는 메시지가 생긴다. 결과를 떠나 이번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한국야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SS포토]임기영-김민식\'손발척척\'
2017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2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KIA 투수 임기영과 포수 김민식이 3회말 2사 1,2루 상대 김재환을 내야땅볼로 처리한 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야구인들은 “한국야구가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2연속시즌 800만 관중을 돌파했다는 숫자에 매몰돼 현실을 외면하면 안된다는 목소리다. 선 감독도 같은 의견이다. 그는 “10년째 정상급 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타자들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리그 평균 방어율이 4점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거품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LA다저스 류현진이나 KIA 양현종, SK 김광현, 두산 장원준 같은 투수들이 각 팀에 두 세명씩 있고 세인트루이스 오승환 같은 투수가 각 팀의 마무리로 있다고 가정하면 지금처럼 타고투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날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선수 수급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도쿄올림픽까지 최고의 선수들을 어떻게 길러낼지를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BC를 통해 젊은 선수들이 국제 경쟁력을 엿보이면 아마추어 트렌드에도 변화가 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기초체력훈련을 등한시하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프로에 입단한 어린 선수들이 훈련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선수 순환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만해도 매년 특급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 감독은 “대표팀에 뽑힌 선수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들의 의식변화까지 이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넥센히어로즈 리드오프 이정후와 4번타자 김하성
넥센히어로즈 리드오프 이정후와 4번타자 김하성.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대표팀 코칭스태프 연령대를 대폭 낮춘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선 감독은 “대표팀은 길어야 2주 가량 합숙한 뒤 경기에 임한다. 기량향상보다 컨디션 관리가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다. 선수들과 격없이 소통할 수 있는 코치들로 구성해야 선수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지 않겠나. 대화와 소통으로 잠재된 선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쪽으로 코칭 문화도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올해 치르는 APBC는 한국야구 미래에 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대회다. 일본, 대만의 젊은 선수들과 경쟁을 통해 한국야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반추할 기회의 장이다.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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