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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년 전 일입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 모인 4만8000여 관중은 그의 프리킥 한 방에 탄성을 질렀습니다. 한국 축구의 월드컵 원정 첫 승(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은 그의 오른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천·수(33·인천 유나이티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축구 소년이 이젠 후배들의 월드컵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기간 동안 ‘이천수의 무회전 킥’이라는 제목으로 월드컵과 축구에 관한 다양한 글을 스포츠서울을 통해 전달합니다. 야구에 ‘돌직구’가 있다면, 축구엔 힘 있고 빠르게 뻗어가는 ‘무회전 킥’이 있습니다. 화끈하고 시원했던 그의 킥이 지면에도 고스란히 묻어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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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리? 여기 좀 와.”
감독의 지시를 어길 선수는 없을 것이다. 13년 전 축구대표팀이 유럽 원정을 치를 때였다. 호텔 식당에서 밥 먹기 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날 찾기에 재빨리 달려갔다. 내가 프랑스 릴 구단에 테스트 받은 것을 아는 히딩크 감독은 날 “릴 리”로 부르곤 했다. 막내인 내가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자 형들도 무슨 일인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대뜸 이런 주문을 했다. “명보!라고 해라.” 난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감독님 뭐라고요? 명보라고 하라고요?”라고 물었다. 히딩크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 없었다. 난 당시 주장인 홍명보 형을 향해 “명보!”라고 외쳤다. 순간 식당엔 난리가 났다. 이런 상황이 재밌는 듯 ‘큭큭’대며 웃는 형들도 있었다. 나와 (최)태욱이가 당시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는데 히딩크 감독은 좀 더 활달한 성격인 나를 골랐던 것 같다. 히딩크 감독은 내가 “명보!”라고 부르는 것을 본 뒤 “앞으론 운동장에서 이렇게 해야 된다. 긴박한 상황에서 형 호칭 붙이고 그럴 시간이 없다”고 전체 선수단에 지시했다.
명보 형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표정만 보면 조금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성격이 좁고 그런 분은 아니었다. 나의 도발을 위트있게 받아넘겼다. 반말 사건이 일어난 뒤 명보 형은 “천수야, ‘명보’ 소리에 임팩트가 좀 있더라.”, “너 그거 진심이지? 말해 봐”라며 긴장을 풀어주셨다. 그래서 편했다. 같은 선수로서(한·일 월드컵), 선수와 코치로서(독일 월드컵), 주장과 코치로서(도하 아시안게임) 난 명보 형, 아니 홍 감독님을 다양하게 만나고 겪었다. 선수들을 이해해주고 지켜주는 게 확실한 분이다. 선수들과 심리적으로 교감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좋은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 장면을 보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새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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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은 내가 다시 팬으로 돌아가는 첫 월드컵이다. 4년 전 남아공 대회에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당시엔 마음 편하게 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2010년 초 사우디아라비아 1부리그 구단과 분쟁이 생기면서 난 무적 신세에 놓였고, 그러면서 남아공 월드컵 출전 희망도 사라졌다. 남아공 월드컵이 열릴 때 난 일본 오미야 입단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가 만으로 29살. 선수 생활 전성기를 맞을 시기에 월드컵이 열렸고, 그러나 난 새출발을 해야 했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날 더 낮췄을 것이다. 금전적인 이익도 포기하며 월드컵을 준비했을 것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엔 그 동안 못 했던 응원을 실컷 하고 싶다. 그리고 홍 감독님과 후배들에게도 파이팅을 불어넣고 싶다. 내 월드컵 경험도 얘기하고 싶다. 지금도 토고전 프리킥 골 기억이 생생하다. 원래 (이)을용이 형이 차는 코스였는데 내가 차고 싶다고 했다. 오른발이 볼을 떠나는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았고, 킥의 곡선도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마음의 동요 없이 차분하게 찼다.
우리 후배들에게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말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강해야 러시아나 벨기에처럼 온갖 경험 다 겪은 선수들과 당당하게 싸울 수 있다. 월드컵 경험이 적다고 다들 우려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나 유럽 무대 경험은 후배들의 큰 자산이다. 이제 그들이 운동장에서 혼을 다해 뛰어주기를 바란다. 내가 태극마크를 달고 죽도록 뛰었던 것처럼.
<인천 공격수·2002,2006 월드컵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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