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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지난해 배우 김남주가 여우주연상을 휩쓸게 한 JTBC ‘미스티’가 창립작이다. 얼마전 종영한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으로는 배우 이나영을 9년만에 안방에 복귀하게 했다. 이 정도면 드라마 제작사 대표의 내공이 보통은 아니겠다 예상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인 글앤그림 황지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은경 작가와 생애 첫 작품부터 창립작까지황지우 대표가 글앤그림을 설립한지는 이제 겨우 2년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 드라마는 SBS ‘백야3.98’(1998)”라고 하니 드라마에 발을 들인건 20년이 훌쩍 넘는, 내공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런 황지우 대표는 “그 ‘백야3.98’이 강은경 작가의 입봉작이었다, 저랑 강 작가를 만나게 해준, 인연을 맺어준 드라마였다”면서 “둘다 20대 꼬맹이 때였는데, 아무것도 모를때였으면서 엄청 아는 척 하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나는 어릴 때는 대표작이라고 할 게 없다. 그래서 제 드라마의 시작을 (드라마외주제작사)에이스토리 시절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도 여전히 경력도 없고 잘 모르는 때라 잠시 영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도 너무 모르고 하다보니까 잘 안되더라. 그렇게 영화를 하던 중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다보니 경력단절이 됐다. 2년정도 일을 쉬었는데, 강 작가는 그동안 너무 대작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작인 SBS ‘여우각시별’을 비롯해 ‘낭만닥터 김사부’, KBS2 ‘가족끼리 왜그래’, MBC ‘구가의 서’ 등 4연속 히트작을 내놓은 강은경 작가는 그전에도 KBS2 ‘제빵왕 김탁구’, ‘오! 필승 봉순영’, MBC ‘호텔리어’ 등으로 대중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드라마를 숱하게 집필한 스타작가다.
황 대표는 “둘이 그때부터 지금껏 쭉 친구처럼 잘 지냈다”면서 강 작가 덕분에 지금의 회사도 차리고, 창립작도 성공적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글앤그림이 만들어진 계기가 오랜 시간 같이 하면서 이제는 친구가 된 작가들이 있어서다”라고 말한 황 대표는 “오랜 시간을 같이 한 친구들이 같이 또 끝까지 있기가 쉽지는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더 좋은 길들이 각자에게 있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강 작가와도 어릴 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40이 되어도 드라마 하고 있을까.’ ‘그때는 우리 이런 사람이 되자. 이런 선배가 되자. 이런 드라마 하자.’ 그런데 20년이 넘었는데 그 마음이 하나도 안 변하고 다 실천을 하게 됐다. 그 바람처럼 ‘미스티’를 같이 했는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안 변했다는 사실에 참 놀랐다”고 덧붙였다. ‘미스티’는 강은경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강 작가의 보조작가로 일하던 제인 작가가 입봉작으로 데뷔한 작품이었다.
또, “‘미스티’는 글앤그림을 있게 한 작품”이라던 황 대표는 “‘미스티’를 끝내고 기억에 남는건 작품 자체도 기억에 남지만, 강자가가 ‘우리 황대표가 잘된 것만으로도 됐다’고 해줘서 너무 벅찼다. 강작가가 저랑 특별한 관계이긴 해도 그런말을 해줄 정도라니”라며 다시 한번 강 작가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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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아름다운 성장과 욕망을 담고파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황 대표는KBS2 ‘신데렐라 언니’, SBS ‘여인의 향기’, MBC ‘에어시티’ 등을 꼽았다. ‘에어시티’는 당시 공항 촬영이 워낙 어려워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면 ‘신데렐라 언니’와 ‘여인의 향기’는 감회가 조금 달랐다. 두 작품은 모두 제목으로도 드러나듯 여성 캐릭터가 강조된 드라마였다.
황 대표는 “‘여인의 향기’에서는 김선아가 사표를 던지는 씬이 나오는데, 그게 내 마음 같았던 드라마였다. 만들면서 이 여자의 인생에 저를 많이 대입하고 만든 드라마”라고 했다. 뒤이어 “제가 여자이다보니까 여성에 대한 고민, 여성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다”면서 “30대가 되고, 40대· 50대가 되어도 계속 성장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면에서 더이상 여배우의 멜로가 20대로 그치는 시대가 아니라고 본다.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도 20대에 국한되지 않고 40대도 활발히 소비한다. 나이가 들어가도 여전히 아름다운 여배우들이 자신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취지로 탄생한 작품이 ‘미스티’이기도 했다. 황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김남주가 여러모로 그런 여성상을 잘 그려줬다. 미스티가 저의 창립작품이기도 하지만, 제가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 같은 작품이 됐다”고 의미를 새겼다. 또, “‘미스티’라는 드라마는 김남주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자리인 것 같다. 김남주는 정말 프로다. 그래서 고혜란이라는 캐릭터가 나온거다. 김남주의 영혼이 깃든것”이라며 김남주가 드라마 성공의 수훈갑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작가와 나는 ‘고혜란, 여우주연상은 받아야 성공했다고 할수 있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김남주는 저에게 정말 고마운 배우다.”
여성의 성취에 관심이 많은 황 대표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어떨지 궁금했다.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게 쉬운게 아닌데, 드라마 제작환경은 더더욱 병행이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이에 황 대표는 “우리 애들이 어릴 때는 회사 직원들과 같이 육아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회사의 배려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회사와 집밖에 없었다. 또 에이스토리 시절 대표님이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분이었다. 우리 가족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해야한다는 분이어서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황 대표는 스스로 “내가 또 열혈맘이기도 하다”고 밝히며 싱긋 웃었다. “내 인생이지만, 엄마의 인생 때문에 자식들이 누릴 것 못 누리는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우리 엄마가 워킹맘이었는데, 내 어린 시절 기억은 참 쓸쓸했다. 그래서 내 아이들은 그런걸 못 느끼게 하려고 아이들에게 더 집중한 거 같다. 그런데 이제는 제 손이 필요가 없을 만큼 다 컸다. 또 이제는 엄마가 일하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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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 속 모두가 행복한 ‘시스템’ 지향
회사 이름 글앤그림은 디지털 시대와 글로벌 시대를 강조하는 요즘 트렌드에서는 보기 드물게 서정적이다. 이 이름을 황 대표는 회사를 세우기 10년전에 만들었다고 했다. “드라마를 하려면 글도 필요하고 그림도 필요하니까 만약 회사를 만들면 글앤그림이라고 해야지 했다”는 황 대표는 “그런데 글로벌 시대에는 영어로 이름을 써야한다고 하더라. 글앤그림은 발음이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도 이름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좋다. 제가 좀 아날로그적인 사람 같다”고 했다.
아날로그적인 감성 덕분에 최근작인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황 대표는 “‘로맨스는 별책부록 같은 경우도 디지털 시대에 저기 캐릭터들은 되게 느리다 싶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 기준이 굉장히 특이했다. 그래도 그게 아름답고 예쁘더라. 좀 손해보더라도 저러면 안될까 싶은 드라마였다”면서 “사실 글앤그림 작가님들도 그럴거다”라고 말했다.
현재 글앤그림에는 강은경 작가를 비롯해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쓴 정현정 작가, 오는 11일 시즌3의 첫 방송을 예고하고 있는 OCN ‘보이스’ 시리즈의 마진원 작가 등이 계약돼 있는데, 황 대표는 “작가들이 ‘황지우니까 (계약)하지 뭐. 우리 그정도 우정은 되잖아’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아마추어적”이라고 주변의 우려를 산다는 황 대표는 “어떤 분은 저를 보고 굉장히 걱정한다. 그런 마인드로 사업을 하냐고, ‘순진한거야 뭐야’ 한다”면서 “그래도 누군가는 그렇게 살아도 되지 않나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별다른 사건 없이 소소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임에도 “아름다운 언어가 주는 순기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뚝심있게 밀고 나갔다. “드라마에 사건이 없어도 되겠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넣지 말라고 했다. 이 드라마가 가진 고유의 색깔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초반에는 논란도 있어서 좀 속상하기도 했다. ‘왜 몰라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어떤 지적은 그렇게 비쳐졌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결론적으로는 저렇게 느리게 사랑하는 커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좋은 영향을 줬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의미를 찾은 황 대표는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는데, 나는 만드는 사람도 행복하면 좋겠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데 누구를 행복하게 할수 있겠나 한다”고 말하면서 글앤그림의 운영 철학을 밝혔다. “회사를 처음 만들때 ‘왜 하려고 하는거지’ 고민했는데,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거였다. 정말 즐기고 행복한 회사가 되고, 그안에서 아이들이, 후배들이 성장하길 바란다. 요즘은 제작환경도, 방송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다보면 조직문화도 많이들 바뀔거다. 콘텐츠의 질도 중요하지만, 평생직장이 없는 요즘 시대에 어떻게 이 공간에 머물다 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야한다고 본다. 그러면 (드라마를)만들어가는 과정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또한, “배우도 스태프도 채널도 다 행복해지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밝힌 황 대표는 “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드라마사가 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포부는 없다. 비전도 소소하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보면서 나이 먹고 삶을 같이 살아가는게 글앤그림이면 좋게다. 그래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경쟁이 치열한 드라마 업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황 대표는 “작품을 하는 사람은 순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가 학예회를 하는게 아닌 이상 주어진 몫을 잘 해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예산에 맞게 만들고 능력에 맞게 만들어야한다. 굉장히 비즈니스적이지만 서로에게 상처가 적으려면 이런 세팅이 잘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한편을 만들때 프로듀서가 세우는 목표가 정말 정확해야 한다. 이 작품을 통해 돈을 벌것인가, 좋은 배우를 쓸것인가, 훌륭한 작가를 데뷔시킬 것인가 분명한 목표가 저마다 있다. 그래서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많은데 그 목표를 생각하며 돌을 놓아가는 과정이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명확하고 실천도 정확한 사람이지만 늘 그 언행에는 고운 결을 담은 황지우 대표다. 앞으로 글앤그림이 보여줄 드라마들에서 황지우 대표의 색깔이 어떻게 묻어날지 기대가 모아진다.
cho@sportsseoul.com
사진|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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