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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거의 커터 같은 슬라이더라고 보면 된다. 각이 굉장히 좋고 빠르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무기를 더해 상대의 분석을 무너뜨린다. LG 에이스 케이시 켈리(31)가 그렇다. 지난해 KBO리그 입성 당시에는 땅볼 유도형 투수로 알려졌지만 늘 상대의 노림수를 벗어나는 전략을 펼치며 진화하고 있다. 2019시즌 초반 투심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를 했지만 어느 순간 커브의 비중을 높였다. 그리고 시즌 후반에는 150㎞를 상회하는 대포알 포심 패스트볼을 구사해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19시즌 켈리는 SK 김광현과 함께 가장 많은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 24회를 기록했다.
변화를 통한 진화는 올해도 멈추지 않는다. 자가격리로 인해 정상 컨디션을 되찾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꾸준히 구종을 연마했다. 상대 타자들이 커브에 초점을 맞추자 지난해까지는 볼 수 없었던 140㎞를 상회하는 슬라이더를 던진다. 2스트라이크 이후 타자 무릎 앞에서 꽃히는 150㎞ 포심과 포심보다 약 20㎞가 느린 커브, 그리고 고속 슬라이더까지 다양한 무기를 앞세워 신속히 아웃카운트를 잡아나간다.
켈리는 “슬라이더 그립을 바꾸면서 이전보다 좋은 슬라이더를 던지게 됐다. 지난해까지는 왼손타자와 상대할 때만 슬라이더를 던졌다. 올해는 왼손 오른손 가리지 않고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만큼 슬라이더가 좋아졌다”며 슬라이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지난해 켈리에게 슬라이더는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구종이었다. 구사율도 10%가 안됐다. 그런데 최근에는 패스트볼 다음으로 슬라이더를 많이 던진다. 개인 통산 첫 완봉승을 달성한 지난 9일 잠실 NC전에서도 켈리는 포심 패스트볼(40개) 다음으로 슬라이더(27개)를 많이 던졌다. 슬라이더로 3회초 애런 알테어, 5회초 노진혁을 헛스윙 삼진처리했다.
늘 켈리와 호흡을 맞추는 LG 주전포수 유강남은 “지난해까지 켈리의 슬라이더는 일반적인 슬라이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거의 커터 같은 슬라이더라고 보면 된다. 각이 굉장히 좋고 빠르다”며 “지난해보다 타자와 상대할 수 있는 무기가 많아졌다. 포수 입장에서도 한결 편하다”고 켈리의 진화를 설명했다.
진화의 결과는 후반기 넘버원 우투수다. 켈리는 8월부터 등판한 11경기에서 9승 1패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기 최다승 투수며 후반기만 놓고 봤을 때 켈리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선발투수는 키움 왼손투수 에릭 요키시 밖에 없다. 특유의 안정된 딜리버리와 제구력은 물론 포심·투심·슬라이더·커브, 그리고 체인지업까지 다채로운 볼배합으로 타자를 처리한다.
차우찬과 타일러 윌슨이 모두 이탈했지만 켈리가 선발진은 물론 불펜진 소모도 최소화시키는 마운드의 기둥으로 우뚝 섰다. LG는 지난 9일 켈리의 완투승으로 불펜진을 가동하지 않았다. 중간투수들이 모두 쉰 만큼 한결 편하게 10일 더블헤더를 치를 수 있다. LG 류중일 감독은 “켈리가 나오면 불펜 운용이 편해진다. 못해도 6이닝은 던지고 7이닝도 꾸준히 간다. 감독 입장에서 켈리가 나올 때는 중간투수들을 운용하기가 정말 좋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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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뚜렷하다. 지난해보다 높은 자리에서 포스트시즌을 맞이하는 것이다. 켈리는 “지난해 와일드카드 1차전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당시 만원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승리투수가 됐다. 내 야구 인생 중 가장 뜨거운 열기 속에서 던진 경기였다”며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는 팬분들을 뵙지 못할 수도 있어 너무 아쉽다. 그래도 포스트시즌 특유의 치열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공 하나, 카운트 하나에 정말 집중해야 하는 경기다. 순위 경쟁이 치열한데 최대한 높은 곳에서 포스트시즌을 맞이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bng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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