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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예상했던 불안 요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더 허무했다. 상처만 남긴 국가대표 축구 한·일전 얘기다.
한·일전은 결과를 떠나 선수 선발부터 미디어 대응, 경기 준비 과정까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A매치 1경기를 치르면서 이토록 여러 논란이 발생한 건 이례적이다. 결국 대한축구협회(KFA) 내부에서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 중 3선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이 야심 차게 꺼내든 애자일(Agile) 조직 개편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애자일 조직은 ‘민첩한’, ‘기민한’ 조직이란 뜻으로 부서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게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한국어로 옮기자면 ‘탄력조직’이다. 정 회장은 지난 2019년 자신이 운영하는 현대산업개발에 애자일 조직체계를 도입, 수평적이고 빠르게 업무를 추진하는 문화 조성에 앞장 섰다. KFA에도 이런 개념을 도입했고, 지난달 15일자로 기존 1본부 6실 19팀의 구성을 2본부 7팀으로 통합했다. 여자축구활성화, 대회혁신, 천안NFC 등 전사적 역량이 집중돼야 할 핵심 과제엔 일부 팀원을 겸직하게 했다. 한마디로 그동안 인력이 특정 업무를 담당했다면 이젠 타 부서 일도 겸하는 ‘멀티 플레이어’를 지향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한·일전을 통해 KFA에 애자일 조직이 ‘과연 맞는 옷이냐’에 대해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KFA는 일반 대기업처럼 큰 규모의 인력을 지닌 곳이 아니다. 애자일 조직은 풍부한 인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 대기업은 인력이 많다 보니 주요 부서를 통합하고 ‘탄력조직 형태’로 운영해도 당장 구멍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KFA는 이전까지 특정 업무를 대체로 1~2명이 도맡아 처리했다. 갑작스럽게 통합과 탄력조직 형태 일을 요구하니 곳곳에서 구멍이 발생한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논란이 된 일부 선수 선발 과정이나 유니폼 문제 등만 봐도 애초 걸러낼 행정 전문가 공백이 두드러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번 조직 개편 전까지는 A 국가대표지원팀장이 벤투호와 KFA 사무국 직원의 가교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A 팀장을 여자축구활성화 프로젝트 팀으로 발령냈다. 현장과 기술파트는 기존 경기인 출신으로 채웠다. 한 축구인은 “A 팀장은 그간 벤투호와 사무국 가교 구실을 하면서 원활한 지원은 물론,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을 예측하고 조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며 “이번에 발생한 문제를 종합해보면 그의 공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벤투 감독도 A 팀장이 물러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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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여러 논란에 대한 대응도 이전같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홍보·마케팅 구조상 문제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정 회장은 이번 조직개편에서 홍보팀과 CSR팀을 마케팅팀으로 통합했다. 수익과 관련한 활동에 집중하는 마케팅팀장이 미디어 대응 등 홍보활동까지 책임지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K리그 구단 복수 관계자는 “홍보와 마케팅은 협업은 할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영역이고, 스포츠에서는 특히 더 그런 구조”라며 “매출 활동을 하는 마케팅에 홍보하라고 하는 건 구조상 맞지 않다. 여기에 CSR까지 집어넣은 건 사실 홍보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고 꼬집었다.
대체로 중복 업무를 통합하고 급변하는 코로나19 시대에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의지엔 찬성했다. 그러나 그게 꼭 애자일 조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일전을 통해 좀더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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