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최승섭기자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A대표팀 ‘벤투호’의 아이슬란드전 대승으로 ‘호랑이의 해’ 2022년 임인년을 활짝 열어젖힌 대한축구협회(KFA)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처지다. 수장인 정몽규(60) 회장이 광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의 회장직에서 자진해서 물러나면서 뒤숭숭하다.

축구 및 체육계 복수 고위 관계자는 17일 “정 회장이 KFA 회장직은 물론, 대한체육회 부회장직 등 그간 자신이 애정을 쏟은 체육계 각 직책에서도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 내 주요 임원은 물론 범현대가 고위급 인사의 조언을 구하면서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정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HDC현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와 관련해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 이후 두 번째다. 그는 “광주 사고 피해자 가족과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 화정아이파크 전면 재시공, 구조 보증기간 확대 등 추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현대산업개발 회장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대기소 들어가는 정몽규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7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 부근 실종자 가족대기소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자연스럽게 그가 ‘9년째 수장’을 지키는 KFA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KFA 한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 거취 얘기에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무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가 KFA 회장직을 유지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KFA 사정을 잘 아는 한 축구인은 “(회장직을 지킬) 명분이 없다”며 “정 회장이 주업으로 삼은 HDC현산 회장직을 내려놓지 않았느냐. 경영상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경영 능력 부족을 인정한 셈이다. KFA 회장직을 유지한다는 건 축구계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 또 다른 축구인도 “정 회장이 지금 KFA 회장직을 유지한다고 하면 구성원 중 누가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언급했다.

KFA 공식 스폰서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스폰서로서는 매우 괴로운 상황이다. 부실시공은 국내에서 가장 부정적 꼬리표가 붙는 것 중 하나다. 그곳의 수장이 얼굴인 단체에 스폰을 하는 것을 달가워할 곳은 없다”고 말했다.

대형 사고에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정 회장을 비롯해 현대가가 한국 축구를 그간 지탱해온 노력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나왔다. 한 원로 축구인은 “KFA를 중심으로 한국 각급 축구 단체가 정 회장과 현대 주요 그룹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가 참으로 안타깝지만 축구계 미래를 위해서라도 정 회장의 거취 등은 좀 더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KFA는 최근 3년간 코로나19 여파로 각종 사업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재정 문제가 크게 대두했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처럼 축구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다른 기업인이 바통을 이어받으리라고 보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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