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여자 장거리 스타 김보름
김보름이 인터뷰 뒤 자신의 장비를 앞에 놓고 포즈를 취했다. 김경무전문기자

[스포츠서울 | 김경무전문기자] “과거에 대해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선수로서 좋은 모습, 좋은 경기 보여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제103회 전국동계체육대회 마지막날인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법원로에 있는 그의 매니지먼트 회사(스포츠 인텔리전스그룹) 사무실에 만난 김보름(29·강원도청)의 얼굴에는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2.4~2.20)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달리 기꺼이 동계체전에 출전했던 김보름은 3관왕(여자 1500m, 3000m, 팀추월)에 등극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높였다. 코로나-19로 2년 만에야 다시 열린 동계체전. 재작년에 이어 그는 3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 여자부 국내 최강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김보름
김보름이 지난 2월19일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 여자 결승에서 곡선 주로를 돌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올림픽 뒤 바로 동계체전에 출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보름은 “올림픽 때 응원을 많이 받았다. 국내 경기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다. 응원받은 만큼 힘이 됐다”고 했다.

4년 전, 그에게는 너무 황당했던 ‘왕따 주행’ 논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세월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국가대표 선수생활은 계속했으나 정신적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 감사 결과, 평창올림픽 팀추월 여자부 쿼터파이널 경기 때 함께 경기를 한 국가대표팀 선배 노선영에 대한 “왕따 주행은 없었다”는 결론이 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씻어내지 못하는 앙금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김보름은 ‘노선영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며 지난 2020년 11월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 이르렀고, 이번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인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6부(부장판사 황순현) 판결로 일부 승소 판결을 받기에 이르렀다.

법원은 노선영이 김보름한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고, 왕따 주행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확인시켜줬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김보름은 SNS를 통해 “2018년 2월24일. 그 이후 정말 많이 힘들었고 포기하고 싶었다. 제일 힘들었던 건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채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되는 상황에서 재판을 시작하게 됐고, 그날 경기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이 이제야 밝혀지게 됐다”고 반겼다.

고통의 터널을 빠져 나온 김보름은 이후 잃어버렸던 웃음도 되찾았다. 지난 2월19일 팀 추월 여자부 결승까지 올랐으나 6위로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은메달을 땄던 평창 때보다 더 기쁘다”고 말한 바 있다.

김보름 사인
김보름이 스포츠서울 독자를 위해 해준 친필사인

김보름은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끼냐’는 물음에 “올림픽에서 돌아오자마자 경기에 출전하게 됐고, 집과 경기장만 오가서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10명이 넘는 팬들이 체전이 열린 태릉스케이팅 경기장을 방문해 응원을 해줘 힘이 났다”고 했다.

법원 판결을 알게 된 순간에 대해 김보름은 “그렇게 4년이 지났는데, 이제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게 진실인지 알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선영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것에 대해선 “진실은 정해져 있다”고 짧게 말했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중, 애초 김보름의 노선영에 대한 왕따 주행 논란을 일으킨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에 대해 팬들이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김보름은 이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인터뷰에 배석한 김동욱 스포츠 인텔리전스 대표는 ‘그날의 진실’에 대해 “우리도 잘 모르겠다. 당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고 거들었다.

올림픽 기간 김보름이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그 정도는 아니다. 보통 여자들이 빠지는 정도”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김보름은 한국 나이로 30살이다. 4년 뒤 열리는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도전할 것인가가 궁금하다. 그는 “운동선수는 나이도 나이인데, 몸관리 부분에서는 자신이 있다. 아직 4년이 남아 있고, 많은 시합과 여러 시즌이 있다”며 “한해 한해 집중하고 싶다”고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특별한 취미없이 운동과 집 밖에 모른다는 김보름.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를 좋아한다는 그는 “사람 김보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쉴 때 방송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소망을 밝혔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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