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4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선데이서울’ 233호(4월1일) ‘신문에 안 난 뉴스, 사건기자 비화(祕話)’와 ‘로칼뉴스’에 실린 2건의 짤막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정관수술’이 문제였다. 이 기사가 눈에 들어 온 것은 그 시대 풍속도가 아련히 떠올라서였다. 내용은 이랬다.

먼저 ‘사건기자 비화’에 실린 ‘정관수술이 부른 가정비극 한 토막’이다.

어느 날 30대 중년의 한 여인이 기자실로 찾아왔다.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았는데 자신은 아기를 가지게 되어 이혼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딱한 사정을 하소연했던 것.

자신은 결단코 손가락질 받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 간통으로 몰아가는 남편 앞에 항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단다.

자신의 억울함을 기사로 써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정관수술을 받았는데 아내가 임신했다는 자연의 섭리나 의학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가끔 있었다.

그 바람에 가정뿐 아니라 사회문제가 되곤 했는데 …. 수술이 잘못돼 벌어진 한 차례 해프닝으로 끝나는 때도 있었지만, 부부싸움이나 이혼 등 가정 비극을 불러오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여인의 난처함과 황당함이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시대의 한 단면이었다.

같은 233호 지방소식 격인 ‘로칼 뉴스’에 실린 또 다른 정관수술에 얽힌 황당한 이야기.

부산항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던 30대 중반의 노동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데 그 사유가 희한하고 기가 막힐 일이었다. 회사가 내민 사유는 “정관수술을 해서 힘이 약해졌으니 해고한다”는 것.

등짐을 나르는 부두 노동자였으니 힘을 쓰는 것은 분명하나 정관 수술이 그의 노동력이나 힘과 과연 어떤 상관이 있는지 해고 사유가 가히 해외토픽감이었다.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의학적 근거도 없이 들이민 해고 사유에 웃음만 날 뿐이다. 정관 수술은 실제 정력이나 체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산아제한이라는 국가 시책을 정면으로 무시한 셈이니 어떻게 되었을까도 궁금하다.

요즘이라면 아마 그 회사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그 황당함이 시중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선데이서울’의 독자라면 누구나 정관수술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이다.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가난한 시대였으니 출산 억제를 위해 콘돔을 널리 보급하고 정관수술을 장려하고 있었다. 당시에 대표적인 산아제한 구호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이 있었다. 또 한때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라는 어마무시한 협박조의 표어도 있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정관수술을 받으라는 유혹을 받았고 수술을 받으면 훈련 면제라는 특전도 누릴 수 있었다. 그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는 합계 출산률 0.8% 라는 아이를 아예 낳지 않는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인구감소를 걱정하며 모든 정책을 출산율 높이기에 쏟아붓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이 실감난다.

뜻밖의 임신으로 누구라도 붙잡고 자신의 결백을 하소연해야 했던 여인의 억울함, 정관수술을 이유로 하루 아침에 해고 당했던 부두 노동자의 황당함… 이 모두 지금은 사라진 50여 년 전, 시대와 세상의 풍속도이다.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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